정부가 최후 수단인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까지 언급하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을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는데에는 미적거리고 있다. 산업은행이 수출입은행에 5000억원을 출자하는 방안과 관련해 불거진 ‘법인세’ 문제다. 속도전 독려 한복판에서 은행 건전성은 자주 간과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수은에 1조원가량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을 현물 출자했다. 산은도 LH 주식을 수은에 출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산은이 LH 주식을 정부에게서 넘겨받을 때의 가격(주당 4950원)과 정부가 지난해 말 수은에 넘겨줄 때 주식 가격(주당 9400원)에 차이가 벌어지면서 산은은 약 500억원의 법인세를 물어야 할 처지가 됐다. 정부와 같은 가격으로 LH 주식을 출자하려던 산은이 주당 4400원가량의 평가차익을 낸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산은에 조세감면이 어렵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산은은 법인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느라 수은 출자를 늦췄다. 결국 산은이 보유한 다른 공기업의 주식을 출자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3일 “LH 주식은 법인세 문제가 걸려 있어 산은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공기업 주식이나 상장기업 주식을 수은에 출자해 세금 문제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수혈이 급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수개월에 걸쳐 세금 깎는 방법을 연구만 하며 시간을 보낸 셈이다.
수은이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공식 방문에 맞춰 금융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된 것도 자기자본 비율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수은은 무역보험공사와 별도로 150억 달러 규모의 금융 패키지를 마련해 시행해야 하는데 현재 수은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시중은행의 경우 14% 정도는 돼야 건전하다고 평가받는 상황인데 수은의 1분기 비율은 9.8%였다. 조선·해운 부문에만 빌려준 돈은 12조원이 넘는다.
게다가 150억 달러 가운데 60억 달러는 이란 정부의 지급보증도 없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이다. 이란 시장에 새로 진출하는 기업들을 위해 지원은 해야겠지만 당장 위험자산 증가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수은 관계자는 “아직까지 병원 건설 등 구체적 사업 모델이 나온 것은 없다”며 “대이란 금융 투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기업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지표에 큰 영향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백상진 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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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03 19:00 수정 2016-05-03 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