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에 덮인 관이 늘어서 있고 바닥에 주저앉은 여성은 눈물을 흘린다. 가족을 찾지 못한 시신들은 뚜껑이 열린 관 속에서 참혹하게….”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사진)씨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카메라를 결코 놓지 않았다. 한 손에 쥔 취재수첩에 참혹한 장면들을 빼곡히 기록해 나갔다. 1967년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에 TV카메라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디딘 그는 베트남 전쟁 취재 경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80년 5월 20일부터 며칠간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낯선 도시 광주 번화가에서 전쟁터보다 참혹한 광경을 마주했다. 1973년 일본특파원으로 자리를 옮긴 지 7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린 힌츠페터씨가 당시 촬영한 영상과 생전에 수집한 5·18 관련 자료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5·18기념재단이 5·18 36돌을 앞두고 지난 2일 광주 쌍촌동 5·18기념문화관에서 개막한 ‘당신은 아는가? 5·18, 그 위대한 연대’ 아카이브전이다. 오는 6월 16일까지 열리는 전시회는 재단이 소장 중인 기록물 가운데 당시 독일과 미국 일본 등의 교포들의 연대활동을 담은 인쇄물과 힌츠페터씨를 추모하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5개 섹션으로 나눈 전시물은 사진출력물 104종과 힌츠페터씨의 영상 4종, 당시 상황을 보도한 퀵(QUICK), 슈테른(STERN), 슈피겔(DER SPIEGEL) 등 독일 주간지 원본자료다.
힌츠페터씨는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외부세계에 알리기 위해 일본 공항까지 촬영 필름을 ‘과자 봉지’에 숨겨 들고 나갔다. 그리고 다시 광주로 돌아올 만큼 투철한 기자정신을 발휘했다. 광주의 참상을 보도한 해외 신문을 다시 숨겨와 시민군들에게 전달할 만큼 그는 철저히 고립된 광주와 아픔을 함께 나눴다.
재단 측은 힌츠페터씨가 생전에 “내 생애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슬픔과 서러움”이라고 5·18을 회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7년 출간된 ‘5·18 특파원 리포트’에서 “그 당시 대중매체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5·18이 평화와 자유, 정의를 위해서 싸웠던 ‘광주’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인에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5·18기념재단은 오는 16일 전시물 기증자와 생전에 “내 필름에 기록된 것들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외쳤던 힌츠페터씨의 부인 등을 초청한 기념행사를 갖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푸른눈의 목격자’가 기록한 1980년 5월의 광주 “5·18, 전 세계인에 영원히 기억돼야”
입력 2016-05-03 20:44 수정 2016-05-03 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