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계 버스기사 아들, 첫 무슬림 런던시장 되나

입력 2016-05-04 04:00

첫 이슬람교 런던시장 탄생이 임박했다. 5일(현지시간) 영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런던시장에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 출신 이슬람 후보가 2위 후보를 20% 포인트 가까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시장 당선은 ‘영국의 사건’으로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서방 주요국의 수도에서 이슬람교 시장이 나오는 첫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2일 현재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노동당의 사디크 칸(45·사진) 후보가 60%의 지지율로 40% 지지율에 그친 보수당의 잭 골드스미스(41) 후보를 20% 포인트 앞섰다면서 칸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 최근 보수당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분열하면서 런던에서 야당세가 강해진 데다 런던시민 860만명 중 100만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도가 칸을 적극 지지하면서 격차가 커졌다.

칸은 1970년 런던의 파키스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버스기사,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그는 북런던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2005년 정계에 뛰어들었다. 런던 남부 투팅을 지역구로 2005, 2010, 2015년 차례로 당선돼 현재 3선 의원이다.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인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교통부 장관도 지냈다.

자수성가한 이미지와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칸은 선거과정에서 이슬람 배경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골드스미스는 “칸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앞장섰고, 그들의 은신처 역할을 했다”고 공격했다. 보수당 역시 인도계 힌두교도를 상대로 “파키스탄계 이슬람교 후보인 칸을 뽑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힌두교도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칸은 환영행사에 불참했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칸은 “그동안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 그들과 전혀 친하지 않다. 나는 원래 극단주의를 가장 싫어한다”고 반박했다. 인디펜던트는 “골드스미스가 미국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처럼 반(反)이슬람 언사로 분열주의적인 선거운동을 펼쳐 칸의 선전을 막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골드스미스는 재산이 2조원 넘는 유대계 부호의 아들이자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때문에 현지 언론은 이번 선거를 영국판 ‘금수저’대 ‘흙수저’ 대결로 묘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최대 이슈였던 대중교통 요금인상을 놓고서도 ‘동결’(칸)과 ‘인상’(골드스미스)을 각각 주장하며 맞섰다.

칸이 런던시장에 당선되면 난민사태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서방사회 전반에 확산된 반이슬람 정서가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이슬람교도가 주요 선출직 수장에 앉음으로써 예기치 않은 사회갈등이 발생하고,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노동당이 브렉스트에 반대했기에 다음 달 23일 예정된 국민투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