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며 개그맨이 됐다. 담배 피우는 표정연기를 하니 배꼽을 잡고 웃는 사람이 많았다. 나같이 못생긴 사람도 개그맨이 될 수 있었다. 정말 기뻤다.
한창 카드 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때다. 개그맨 선배 김병조 형은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출연료의 10%를 떼어 노름빚을 갚아주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고 계셨다.
병조 형은 MBC ‘일요일밤의 대행진’에 함께 출연하자고 했다. 담당 PD에게 “배영만이가 빚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출연 좀 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또 ‘인간 복사기’ 최병서 선배가 PD들에게 내 흉내를 자주 낸 것도 캐스팅에 한몫했다. 선배들 덕분에 ‘파이팅 황순경’이라는 시트콤에 출연할 수 있었다.
병조 형과 방범대원 역을 맡았다. 6개월간 대사 한 마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사 한 마디를 받았다. 병조 형이 꿈속에서 데모를 하는데, 방범대원들이 “방범도 인간이다. 방범비를 보장하라”고 외치면 내가 “보장하라”는 대사를 해야 했다. 그러면 경찰들이 방범들을 진압하는 신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방송사고가 났다. 생방송 프로그램인데 경찰 역을 맡은 후배 개그맨이 내가 대사를 하기도 전에 “뭘 보장해”라는 대사를 먼저 해버린 것이다.
현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처럼 대사를 받았는데 그것도 못 찾아먹는다는 핀잔을 들을 판이었다. 또 쓸데없는 애드리브를 하면 힘들어질 게 뻔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이었다.
순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 나도 모르게 그 후배의 입을 막고 “맞다고요. 보장하라고요”라고 얼떨결에 소리쳤다. 근데 이게 ‘빵’ 터졌다. 나중에 카메라감독이 배꼽 빠져 죽을 뻔했다고 했다. 이렇게 유행어 ‘맞다고요’는 탄생했다. 이후 방송 때마다 ‘맞다고요’를 외치고 또 외쳤다.
‘맞다고요’를 시작으로 ‘참 나 왜 그러냐고요’ ‘아니라고요’ ‘알았다고요’ 등 여러 유행어로 스타덤에 올랐다. 1989년 MBC 연기대상 코미디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수상 후보 5명 중 내가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 받는 것도 모르고 낡은 청바지와 티를 입고 시상식에 갔다.
이날 사회를 본 변웅전 아나운서는 “수상자는 맞다고요 배영만”이라고 발표했다. 갑자기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꽃다발도 안겨졌다. 변 아나운서는 수상 소감을 청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얼떨결에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담당 PD가 힐끔 눈치를 줬다.
“아차, 실수했구나. 집사람과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어야 하는데….”
수상 소감을 잘못 말했다고 후회하고 있는데, 이날 대상을 받은 배우 김혜자 권사님이 내게 불쑥 다가오더니 “어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네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저, 잘못 얘기한 거예요?”
“아니에요. 믿음이 있으니 얘기하셨겠죠.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배영만씨와 나밖에 없어요….”
나는 자리에서 도망쳤다. 이날 나는 수상자 단체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런데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지금 나를 신앙을 고백하는 간증자로 쓰고 계신다. 할렐루야.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배영만 <4> 방송사고로 얼떨결에 외친 ‘맞다고요’ 빵 터져
입력 2016-05-04 18:57 수정 2016-05-06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