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레이저광선

입력 2016-05-03 20:14

어린이날 선물로 레이저광선총을 무척 갖고 싶었던 적이 있다. TV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이 이 총을 쏘아대면 적들이 맥없이 픽픽 쓰러졌다. 조르고 졸라 엄마가 사줬는데 불빛이 생각했던 거와는 영 딴판이었다. ‘효과’도 없었고 친구 얼굴에 쏘아댔다가 둘이 주먹다짐만 했다. 물리학 사전을 보면 레이저광선(laser radiation)은 레이저에서 방출되는 단색성의 광선으로, 초원거리에 도달하며 렌즈 등으로 극히 작은 점에 집중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레이저광선’이 유명하다. 화가 난 대통령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쏘아보면 그 빛을 맞은 상대방은 기를 펴지 못하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집권 전부터 많은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매서운 눈빛을 레이저광선이라 부르며 무서워했다.

2013년 6월 취임 후 첫 중국 방문을 앞두고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있었던 일화다. 경제·외교 현안이 많아 이에 골몰해 있던 대통령에게 한 수석이 방중 성과를 외부로 알리는 데는 판다를 선물로 받아오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면서 한국으로 꼭 데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판다 한 마리를 국내에서 1년간 사육하는 데 드는 대나무 값 등도 보고했다. 난데없는 판다 이야기에 짜증이 난 박 대통령은 예의 레이저광선을 쏘며 “하던 일이나 하세요”라고 면박을 줬다. 이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몇 개월 뒤 경질됐다. 한 전직 장관도 “박 대통령과 맞짱 떠 이길 사람은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레이저광선 한 방에 여당 원내대표도 나가떨어졌으니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제 공포의 레이저광선을 그만 쏠 때가 됐다. 집권 중·후반기,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통령의 레이저광선을 맞고 쓰러질 사람이 크게 줄어든 데다, 괜히 잘못 쐈다가는 정국을 더 꼬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사랑의 눈길을 보내보면 어떨까. 그 대상은 각료든, 비박이든, 야당이든 다 좋다.

한민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