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토끼 귀때기가 없어졌어요." 열심히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던 한윤옥(86) 할머니가 울상을 지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찾을 수 없다. "거기 오른쪽 팔꿈치 밑에 있잖아요." 전용숙(61·여) 센터장이 분홍색종이를 오려 만든 문제의 '토끼 귀'를 찾아주자 한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지난달 20일 방문한 경기도 부천 소사구 호현로 소사제일주간보호센터(보호센터)에서는 종이접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중풍이나 치매에 걸린 이 지역의 노인 20여명은 매일 이곳을 찾는다. 192㎡(약58평) 규모의 이 시설은 노인들에게는 사랑방이고, 그들의 자녀에게는 봉양의 노고를 일부 짊어져 주는 곳이다.
보호센터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인 소사제일교회(이진수 목사) 1층에 있다. 교회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2006년부터 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다세대가구가 밀집된 이 지역은 주민 대부분이 차상위계층이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병을 앓고 계신 어르신들이에요. 특히 치매와 중풍을 앓고 계신 노인들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점점 고립됩니다. 그들을 돌봐줄 누군가 필요했죠.” 이진수(63) 목사는 보호센터를 설립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당시 이 지역엔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전무했다. 소사제일교회도 복지시설을 설립할 재정적 여력이 없었다. 고민하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노인복지시설 건립 지원을 목적으로 경기도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한 ‘은빛사랑채’ 사업에 지원해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도에서 물적 지원을 받아 보호센터를 세웠다. 이 목사가 초반 3개월간 센터장을 맡고, 그 바통을 아내인 전 센터장에게 넘겼다. 전 센터장은 서울신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다수의 복지기관에서 10년 이상 복지사로 근무했다.
보호센터에서는 노인들에게 다양한 편의를 제공한다. 매일 오전 9시에 차량을 통해 노인들을 모셔오며 혈압, 혈당 체크 등 간단한 검진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건강체조 후 최신 시사, 문화 관련 뉴스를 알기 쉽게 요약해 어르신들에게 전달한다. 이후에는 요일별로 집중물리치료, 종이접기, 이·미용 서비스, 구슬공예, 요가, 수지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개 오후 6시에 귀가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노인들을 위해 오후 8시 이후까지도 운영한다. 이곳에는 전 센터장을 비롯해 사회복지사 3명, 물리치료사와 조리사 각 1명이 상시 근무하며 10여명의 강사와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업무를 돕고 있다. 전 센터장은 “봉사자 중에는 소사제일교회 성도가 아닌 이들이 상당수”라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해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센터장은 보호센터의 가장 큰 역할을 노인들의 사회성 증진으로 꼽았다. “여기에 오면 행복해. 외롭지 않아. 친구 같은 동생들이 있고 잘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아.” 보호센터 내 최고령자 김정순(102) 할머니의 말이다. 보호센터는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주관한 장기요양기관 평가에서 A등급(상위 10%)을 받았고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소사제일교회에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현재 위치에 교회 건물을 지을 때만해도 반대가 거셌다. 일부 주민들은 터파기 공사장에 들어가 드러눕기도 했다. 교회가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보호센터가 세워진 후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지역 주민 김모(49)씨는 “일용직이라도 맞벌이를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이들에게 치매나 중풍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며 “교회가 그 일을 대신해 주니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성도 수도 100여명으로 성장했다.
소사제일교회는 앞으로도 노인을 위한 섬김에 매진할 계획이다. 이 목사는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보호센터를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독거노인 등을 위한 먹거리 나눔 사역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소사제일교회 이진수 목사 인터뷰
“괴롭히던 병마 거의 완치… 이웃 섬기라는 뜻”
한 올도 없는 머리카락과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걸음걸이, 이진수 목사의 첫 인상은 평범치 않았다.
“오롯이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한 이유가 있지요.” 이 목사는 덤덤하게 자신의 개인사를 밝혔다. 그는 무려 28년 동안 병마와 싸우고 있다. 1988년 35세에 근(筋)무력증을 동반한 흉선암에 걸렸다. 흉선은 가슴뼈 뒤에 위치한 면역기관이다. 근무력증은 근육의 수축력이 저하되고 근육이 쉽게 피로해져 힘이 빠지는 질환이다. 병세가 깊어지면 일어서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하나님께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어요.”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하고, 약으로 근무력증을 완화시켰다. 1년 가까이 병상에서 보내며 투병한 끝에 상태는 점차 호전됐다.
“아프고 나니 과거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약하고 소외된 자를 외면치 안겠다던 신학생 시절의 다짐이 떠올랐습니다.” 1970년대 중반 서울신대생 시절 이 목사는 다락방전도협회 활동을 하며 정체성을 찾았다. 다락방전도협회는 이화여대 초대총장을 역임한 고 김활란 박사를 중심으로 1960년에 설립됐으며 윤락여성과 보육원, 군부대 등에 대한 특수선교와 농어촌선교를 펼쳤다.
경제적 빈곤층이 대부분인 지역을 섬기기 위해 1990년 소사제일교회에 부임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인 열악한 환경에서의 사역이었지만 가난한 이웃을 섬기겠다는 생각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근무력증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2006년에는 폐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됐다. “당시 소사제일주간보호센터 설립을 추진하던 중이었어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폐 한쪽은 절반 가까이, 다른 쪽은 3분의 1을 잘라내고 가까스로 살아났고 무사히 보호센터를 설립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2011년, 역시 폐 주변에 암이 생겼다. “이젠 정말 데려가시려나 싶었어요. 유서까지 써놓고, 성도들에게도 더 이상 날 위해 기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이 목사는 부천시기독교총연합회 재개발대책위원으로 시민들과 뉴타운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다 포기하려 하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1년쯤 지나 암세포가 사라진 거죠. 아직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5년 가까이 괴롭힌 근무력증도 거의 완치됐다. 현재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정기 검진을 받고 있다. 함께 뉴타운 반대운동을 벌인 지역주민들과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됐다.
자신의 삶을 보너스라 칭한 이 목사는 “하나님이 덤으로 주신 인생, 언제 데려가시더라도 후회 없도록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이사야 기자
[한국의 공교회-소사제일교회] 가족도 하기 어려운 일을… 중풍·치매 노인 20여명 돌봐
입력 2016-05-04 19:19 수정 2016-05-05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