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수사·재판 맞춤형 청탁 의혹

입력 2016-05-03 00:05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경찰·검찰의 수사, 보석 및 재판 결과까지 단계별로 ‘맞춤형 청탁’을 시도한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 법조 브로커, 전관 변호사 등이 방패막이로 동원됐다. 자신의 범죄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를 돈과 연줄로 무력화하려 한 것이다. 검찰은 정 대표를 비공개로 불러 조사하는 등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검·경의 연이은 무혐의=서울지방경찰청은 2014년 정 대표의 해외 원정도박 혐의를 수사했다. 2012년 6월 마카오 카지노 3곳에서 329억원 상당의 도박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해 7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의견을 달아 검찰에 넘겼다. 당시 정 대표 측이 수사 무마를 위해 백방으로 뛰면서 경찰 간부 2명에게 로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일 “정 대표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그런 사실은 없는 걸로 나왔다”고 말했다.

사건을 송치 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도 4개월 뒤 무혐의 처분했다. 검·경 수사 단계에서 변호인은 검사장 출신 H변호사였다. 브로커 이모(56)씨가 고교 동문이자 친분이 있던 H변호사를 정 대표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은 빼고 상습도박 혐의만 적용=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지난해 10월 정 대표를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마카오에서 ‘정킷방’(카지노에 보증금을 걸고 빌린 VIP룸)을 운영하던 폭력조직원 출신 이모(40)씨가 검거되면서 새로운 증거가 확보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정 대표는 2012년 3월, 5월 및 9월과 2014년 8∼10월 100억원대 원정도박을 한 혐의를 받았다. 특히 2014년 8∼10월은 검찰이 경찰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할 때였다. 검·경이 앞서 무혐의 처분했던 2012년 6월의 도박 혐의는 이때도 제외됐다.

검찰이 정 대표를 구속 기소하면서 횡령죄를 묻지 않은 대목도 의혹을 낳는다. 검찰은 “비상장인 네이처리퍼블릭은 개인회사 성격이 강해 횡령을 적용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피고인은 네이처리퍼블릭 등이 보유한 자금을 이용해 도박빚 정산대금을 세탁하기도 했다’고 적어 놨다. 재판부가 수사 기록을 보고 정 대표에게 횡령 혐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때도 H변호사가 사건을 맡고 있었다.

◇구명 로비 총력전 벌인 2심=정 대표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되자 크게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횡령이 아닌 개인 돈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된 데다 자백까지 한 상태니 집행유예를 예측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소 이후 정 대표 측의 전방위 구명 로비가 펼쳐진다. 정 대표는 최모(46·여)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20억원을 지급했다. 성공보수 30억원도 추가로 약정했다. 보석 석방을 조건으로 한 ‘원 포인트 수임’ 성격이 강하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를 기소한 S부장검사를 찾아가 구형량을 낮춰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법원 인사로 재판장이 J부장판사로 바뀐 이후에도 청탁 시도는 이어졌다. 정 대표의 지인인 성형외과 의사가 수도권 지역 K부장판사를 접촉해 “J부장판사에게 정 대표 사건을 잘 얘기해 달라”는 부탁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정 대표의 보석 신청은 결국 기각됐고, 지난 8일 1심에서 4개월이 깎인 징역 8개월이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이번 사안을 수사할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했다. 또 정 대표의 구명 로비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현직 판·검사와 전관 변호사 등 10여명을 고발했다.

지호일 양민철 기자 blue51@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