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빠진 사과… 옥시, 독성·유해성 여전히 인정 안해

입력 2016-05-02 18:38 수정 2016-05-02 21:33

사건 발생 5년 만에 고개를 숙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의 사과문은 여론 눈높이에 크게 못 미쳤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업체 중 가장 많은 사망자와 피해자를 냈지만 보상 기금은 당초 발표했던 100억원에서 증액되지 않았다. 제품 유해성에 대해서는 “검찰 조사를 기다린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형식적인 사과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등급 판정 피해자 직접 보상만 언급=옥시 한국 법인의 아타 샤프달 대표는 2일 기자회견에서 “1등급과 2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 중 자사 제품을 사용한 이들을 대상으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1·2등급은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거의 확실하거나 가능성이 높은 피해자를 뜻한다. 정부 조사 결과 1·2등급 피해자 수는 사망자 94명을 포함해 221명이다. 이 중 옥시 제품 사용자는 177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 등급을 받은 피해자나 다른 제조사의 제품을 옥시 제품과 함께 사용한 경우에는 옥시가 출연한 기금 100억원을 통해 보상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역시 확정안은 아니다. 샤프달 대표는 “다른 제조·판매사들이 동참해주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옥시 제품과 함께 다른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의 보상은 옥시 측에서 전적으로 보상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등이 직접 사과와 함께 보상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만큼 옥시는 이전보다 파격적인 보상안을 제시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옥시 측은 피해자 규모가 4분의 1 수준(41명)인 롯데마트의 보상 재원(100억원)과 동일한 액수의 인도적 기금 외에는 추가 액수를 언급하지 않았다. ‘불매운동’ 등 옥시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잠재울 수 있는 보상 대책에는 크게 못 미쳤다는 평가다. 옥시는 2014년 50억원의 인도적 기금을 출연한 데 이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지난달 21일 “50억원을 추가 출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면피용’ 사과에 여론 싸늘=옥시의 사과는 검찰 수사에 대비한 ‘면피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주부터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판매한 옥시 임직원들을 본격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이날 샤프달 대표는 “나도 아들이 있는 아버지로서 피해자의 아픔을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감정에 호소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피해 어린이를 데리고 단상에 올라간 피해자 부모들을 향해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품의 독성·유해성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전에 유해성을 몰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품은 15년간 팔렸다”며 “검찰에서 조사하고 있는 만큼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도 조사 결과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검사)은 옥시가 레킷벤키저에 인수된 후에도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를 10년 동안 판매한 점에서 영국 본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또 사건이 불거진 뒤 옥시가 불리한 자료를 은폐한 정황에 대해 “본사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3일 옥시 연구소 소장 조모씨, 전직 선임연구원 최모씨, 현재 연구소 직원 김모씨를 소환한다.

김유나 노용택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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