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구조조정 ‘폭풍전야’… 숨죽인 협력사들

입력 2016-05-03 04:00

현대중공업에 선박 기자재를 납품하는 울산 소재 A업체 대표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그는 “업계 불황으로 협력사들의 매출이 계속 줄고,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이번에 타격을 입는 업체가 많을 것”이라며 “우리 회사 역시 80명 직원 중 40명을 내보내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40명을 해고하지 말고 차라리 교대근무를 하자”는 등 대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방법을 못 찾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여파로 납품업체들의 은행 대출이 더 깐깐해지면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조선·해운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중소 협력업체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기업 원청업체들이 법정관리나 구조조정에 돌입할 경우 협력업체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구조조정 당사자인 대기업에 비해 협력업체들은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있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가 될 우려도 높다.

현재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대기업의 협력업체는 700여곳이다. 이들 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9만4700여명. 해운업의 경우 항만터미널 등 전국에 있는 대리점까지 포함하면 수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협력업체 직원 수만명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구조조정 시간표 앞에 숨죽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대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하청업체의 대량 실직이 시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아직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수도 확정되지 않았고, 어떤 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지 알 수 없어 피해 업체를 추산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구조조정과 관련해 협력사들이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는 납품대금이다. 통상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대금을 지급하려면 3∼4개월 걸리는데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받지 못하는 대금이 늘 수 있다. 또 판매대금을 어음으로 받은 기업들의 연쇄 타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은행권이 조선·해운업종 기업들의 대출 심사를 강화할 경우 전체 업계의 자금난도 우려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납품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더라도 근로자 노임 채무는 우선 변제토록 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조선·해운업에 만연한 전속거래(독점적 납품) 관행과 어음결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소 협력업체들은 정부와 대기업의 구조조정 방향이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부산지역의 조선해양 기자재 업체 B사 관계자는 “구조조정 방향을 공론화해 협력업체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 입장을 반영해야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업체들은 손을 놓은 채 상황만 주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업체들은 단기적 해법이 아니라 경쟁력 확보에도 신경 쓰는 등 조선·해운업의 침체기를 벗어날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B사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조선업 다운사이징이 필요하지만 구조조정 이후의 경쟁력 확보를 고민해야 한다”며 “친환경 선박 등 우리가 조선업의 강점을 키워 미래 먹거리로 만들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박윤소 이사장도 “구조조정을 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 불균형한 체질을 개선하는 업계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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