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는데, 안철수를 리더로 여기고 그 밑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2013년 11월 새정치연합 대표로 세 규합에 나설 때 안철수 영입 제의를 받은 여권 고위 정치인)
“초선도 안철수를 따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나가고 있다.”(2014년 3월 민주당과 합당한 이후 민주당 출신 3선 의원)
“개인의 대권욕에 야권은 자멸하고 그 자신도 정치권에서 존재감이 쇠멸할 것이다.”(2016년 3월 야권 고위 인사)
‘안풍’(안철수 바람)을 일으키며 혜성처럼 등장해 2012년 대선판을 흔들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이후 3년간 이런 평가를 받았다. 정치권에서 안철수는 ‘바보’가 돼 가는 모양새였다. 늘 ‘철수’ ‘회군’ ‘무능’이 따라붙었다.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그는 친박과 친노를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 꼴통이 좌지우지하는 한국 정치판에서 ‘팽’당했다. 여권은 민생·경제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무조건 반대’만 하지 않는 그를 활용하지 않았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특정 계파 이익을 앞세워 그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기득권 정치세력들은 ‘안철수 바보 만들기’에만 주력했다. 필자는 2년 전 새정치민주연합이 막 출범한 직후 ‘안철수 바보 만들기의 역설’이라는 칼럼을 통해 경고했다. 당시 그를 손가락질하며 웃는 사람들이 진짜 바보가 될 수 있다고.
안 대표는 지난 4·13총선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기존 정치권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정치판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등 여권이 무능하고 오만해서 반사이익을 거둔 측면도 있지만 ‘강철수’(강한 안철수)가 됐기에 가능했다. 안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찬밥신세로 내몰릴 때 사석에서 “정치판에 들어와 많은 것을 압축적으로 배우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할 당시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강한 이미지와 함께 뚝심이 엿보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총선을 진두지휘할 때는 결기에 찬 모습도 보였다. 국민에게 뭔가 새정치를 보여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4·13총선 결과와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안풍이 다시 불고 있음을 방증한다. 국민일보와 지앤컴리서치, 한국갤럽의 야권 차기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는 잇따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정치권에선 국민의당 역할이 커지자 어느새 ‘안철수바라기’가 늘어나고 있다. 제1당을 빼앗긴 여권에서는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안 대표에게 구애하고 있다. 더민주도 국회에서 캐스팅보터의 수장역할을 할 안 대표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정치 신인은 물론 기존 정치인들까지 안 대표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달 15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38석의 원내 교섭단체인 우리 국민의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총선 전 국민의당이 3당 혁신체제로 바꾼다면 타협의 정치문화가 만들어지고, 담합과 공생이 아니라 혁신경쟁 체제로 전환될 것이며, 책임정치가 획기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4년 전 정치를 잘 모를 때 참신한 바람으로만 승부를 걸었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뒤 다시 부는 안풍은 더욱 강할 수 있다. 하지만 표를 몰아준 국민의 시선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 갈수록 꼬이는 남북관계와 국내외 외교안보 문제, 특히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경제 살리기에 있어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시험대에 올랐다. 안 대표가 다시 바보가 되지 않길 기대한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안철수, 다시 바보가 안 되려면
입력 2016-05-02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