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은에 ‘구조조정 실탄’ 행동 압박

입력 2016-05-02 04:01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30일 경기도 남여주컨트리클럽에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왼쪽),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골프 회동을 갖고 있다. 이날 유 부총리는 내수 활성화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공개적으로 골프를 쳤다.<기사 14면>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에 동참하라고 한국은행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일 “중앙은행이 국가적 위험요인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지난 29일 언론사 경제부장단을 만난 자리에서도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국가 재정을 동원하는 것보다 한은의 출자가 가장 신속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이 국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에 직접 자본금을 출자하려면 발권력을 동원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 재정으로 하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필요한데 추경 편성 요건에 안 맞을 가능성이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한은이 돈을 찍어 산은에 출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9일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 재정의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정부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금융위는 산은 자본 확충 방안으로 코코본드 발행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은이 출자하는 방식은 한은법이나 산은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산은의 코코본드를 한은이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법은 현행 법률상 가능하다. 코코본드는 유사시 투자금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되는 회사채로, 금융지주회사나 은행이 발행하면 자기자본으로 인정해준다.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난 산은 고위 관계자도 한은이 기업 구조조정을 돕는 방법으로 산은에 대한 출자와 산은의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 등)을 매입하는 방식을 언급했다. 그는 한은이 기관투자가들처럼 산업금융채권을 사는 방식은 산은의 자금 조달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기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KBS 프로그램에 출연, 구조조정 재원 마련 방법에 관해 “가능한 재정과 통화정책 수단의 조합을 생각해보고 있다”며 “하나의 방법을 쓰기보다 폴리시 믹스(정책조합)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선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있어 유력한 아이디어로 정책조합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관한 논의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이 주재하는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가 4일 첫 회의를 연다. 기재부·금융위와 한은, 산은, 수출입은행 관계자가 참석하는 회의로 자본 확충 규모와 방식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정부와 한은의 견해차가 좁혀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