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낮 12시, 경기도 의왕 서울소년원 정문에 치킨 4마리가 도착했다. 치킨을 배달한 가게는 원래 오후 2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사장이 오전 일찍 문을 열고 닭을 튀긴다.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소속 한우리독서봉사단 이동희(56·여) 팀장이 ‘특별 주문’을 해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을 받아든 이 팀장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뜻하게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에서 특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1996년부터 20년째 서울소년원에서 독서지도 봉사를 한다. 그 사이 유치원을 다니던 두 아들은 성인이 됐다. 이 팀장은 “다 내 아이들 같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했다. 속속 다른 ‘엄마’들이 도착했다. 왕옥현(53·여) 류영애(52·여) 고승열(46·여) 독서지도사는 컵라면과 과일을 챙겨 왔다.
이날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은 이미 택배로 소년원에 와 있었다. ‘독서지도사 엄마’들은 한 손에 치킨과 과일, 다른 손엔 책을 들고 ‘철문’을 지났다.
10평 남짓한 상담실에 아이 5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4개월을 보내고 오는 31일 퇴원하는 민호(가명·18)가 엄마들을 반갑게 맞았다. 1년 넘게 이들을 만난 민호는 이제 먼저 말을 건넨다. 소년법에 따라 9호·10호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은 6∼24개월가량 사회에서 분리된 채 소년원에서 지낸다. 여드름 난 얼굴로 분주하게 치킨을 먹는 모습은 철문 밖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서양 풍속화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이한 책을 놓고 대화가 시작됐다. 이 팀장이 미국 여류화가 메리 커셋이 그린 ‘목욕’을 펼쳐보였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발을 씻겨주는 모습이다.
“30초만 그림을 가만히 살펴보자.” “이 아이는 어떤 기분일까?” 류 지도사가 물었다. 다들 엄마를 떠올렸을까. 침묵이 흘렀다. “사랑 받는 기분일 것 같아요.” 민호가 답했다. “집에 가면 엄마 발을 씻겨드려볼래?”라고 류 지도사가 묻자 민호는 낮은 목소리로 “네”라고 했다. 소년원 생활이 얼마 안 남았다며 장난을 치던 민호의 목소리는 살짝 갈라졌다.
다음 그림은 조르주 쇠라가 그린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가족 혹은 연인이 한가롭게 나들이를 즐기는 풍경이다. 왕 지도사가 “이 그림 속 날씨가 어떨 것 같아?”라고 묻자 한 아이는“요즘 날씨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가족하고 놀러가기 좋은 날씨예요”라고 다른 아이가 덧붙였다. 왕 지도사는 “여기서 잘 지내고 얼른 나가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내자”고 했다. 아이들은 그림 속 봄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후 1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독서지도사 엄마’들은 책을 나눠주며 다음에 만날 때까지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하나씩 골라오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은 연신 책장을 들춰봤다.
고 지도사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이 책을 통해 가족과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왕=김판 기자 pan@kmib.co.kr
“책 속 그림처럼 가족과 봄나들이 가고 싶어요”
입력 2016-05-0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