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서 보는 유월절… 성경 속 감동 그대로

입력 2016-05-01 18:31
요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 그리심산 정상 사마리아 마을에서 지난 20일 유월절 의식이 진행됐다. 흰색 옷을 입은 사마리아인들이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한 채 양들을 손질하고 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집안의 누룩을 제거하는 것으로 유월절을 맞이했다. 대청소를 하고 뜨거운 솥에 집기들을 넣어 삶아냈다. 상점이나 음식점에선 발효시킨 빵이나 장류, 주류 등은 일절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갈릴리 사해 가이사랴 등 바다나 호숫가 성지에선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명절을 즐겼다.

‘거룩한 땅’ 이스라엘에서 바라본 유월절 풍경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것을 기념해 지키는 절기로 올해는 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였다. 국민일보와 다비드투어는 18∼26일 29명의 순례객이 참여한 가운데 ‘유월절 절기체험 성지순례’를 했다.

◇유월절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매년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북쪽 그리심산 정상에선 양을 직접 잡아 제사 드리는 사마리아인들의 특별한 유월절 의식이 치러진다. 20일 그리심산 사마리아 마을에서 이 의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오후 7시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흰색 모자와 가운으로 정결하게 옷을 차려입은 남성 사마리아인들이 막 잡은 양을 손질하고 있었다. 한쪽 구덩이에선 양의 가죽과 내장을 태웠고, 반대편에선 잡은 양을 굽기 위해 화덕에 열을 가하고 있었다.

순례길을 안내한 황성훈(예루살렘샬롬교회) 부목사는 “금색 지팡이를 잡은 서열 1위 제사장의 명령에 따라 50여 마리의 양들을 한 번에 잡는다”고 설명했다. 이때 양이 흘리는 첫 피를 그릇에 받아 각자의 집 문설주에 바르고, 서로 이마에 발라주며 축복한다. 출애굽 당시 마지막 죽음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행한 것처럼 말이다(출 12:7).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믿는 사마리아인들은 의식을 치르는 내내 축복문을 흥얼거렸다.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기쁨을 찬양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순례객 김종연(의정부은혜교회) 목사는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절기와 전통을 끝까지 지키며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온 그들의 열정에 감동했다”면서 “특히 나이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힘차게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경의 시편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곧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성지순례 중에 ‘유월절 특별 세미나’를 인도한 김형종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았다”고 전했다. 예수님만이 유월절을 완성하신 분이다(마 5:17).

◇길 위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나사렛은 텔아비브처럼 세련되지 않았다. 대도시인 예루살렘과 달리 시골스럽고 평안해보였다. 황 목사는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아랍 기독교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는데 2009년 발표에 따르면 69%가 아랍 무슬림”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아랍인 도시 중 가장 큰 지역이다. 그럼에도 나사렛에선 유대인과 아랍인 간 충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평화, ‘샬롬’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예수님의 고향 도시에서 깊게 깨달은 말씀이다.

순례객들은 각기 다른 여정에서 주님을 만났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요단강에서 만난 이도 있었고, 배로 갈릴리바다를 건널 때 저만치에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것 같다는 이도 있었다. 이현호(청주 오송생명교회) 목사는 “아론의 축복을 연상하며 헬몬산 주변 샘과 요단강에서 물을 받았다”면서 “오는 어린이주일에 이 물로 유아세례를 베풀려고 한다”고 말했다.

야곱은 긴 여정 끝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한 순례객이 큰 목소리로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찬양을 부르자 모두 따라 불렀다. 김옥랑(동해 한사랑교회) 전도사는 큰 소리로 기도했다. 그는 “앞으로 내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고백했다. 순례길에서 만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 사명을 회복하라.”

예루살렘·나사렛=글 ·사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