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브로커 부르는 ‘깜깜이 보석’… 투명한 기준 세워라

입력 2016-05-01 18:17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도박 사건이 법조 비리 의혹으로 불거진 발단은 보석(保釋) 문제였다. 정 대표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회사 상장과 중국 사업 투자가 중단될 위기라며 ‘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사유로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자 ‘석방’을 조건으로 변호인에게 50억원을 베팅한 터였다. 브로커라는 건설업자가 관련 판사를 만나고 검찰이 긍정적인 보석 의견서를 써줬다고 알려지면서 구명 로비 사건이 됐다.

결국 보석은 기각됐지만 정 대표가 돈과 로비로 석방을 사겠다고 달려든 것은 제도에 그럴 여지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가능성을 봤기에 일반적 사유인 건강 문제도 없이 보석을 신청하고 거액을 제시하며 변호인과 브로커를 동원했을 테다. 그 여지는 투명하지 않은 보석 절차에 있다. 무죄 추정의 형사소송법 원칙을 지키면서 피고인의 도주를 돈으로 제어하는 제도인데, 법령에 정해진 기준이 너무 포괄적이라 관행과 재판부 판단에 의존한다.

형사소송법 95조는 보석 불허 요건 6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징역·금고 10년 이상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을 때, 상습범일 때,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있을 때, 피해자 측에 해를 가할 우려가 있을 때 등이다. ‘이런 경우 보석을 허가하라’는 게 아니라 ‘이런 경우가 아니면 허가해야 한다’는 규정이어서 재판부 재량권이 크다. 양형 이유를 제시하는 판결문과 달리 보석 결정문에는 허가 여부만 명시된다. 왜 풀어주는지는 재판부만 알고 있다. 불허 요건에 해당해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재판부가 판단하면 풀어주는 ‘임의적 보석’도 가능하며, 보석금 액수는 관행에 따를 뿐이다.

법원이 정 대표 보석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검찰 답변은 “적의(適宜) 처리”였다. ‘적절히 처리하라’는 말이 긍정 의견으로 읽히자 검찰은 “보석 결정은 원래 법원의 몫”이라고 항변했다. 이렇게 투명성이 결여돼 브로커가 꼬이는 것이다. 양형 기준을 정하듯 보석의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고 그 절차를 공개해야 한다. 구속집행정지 형집행정지 가석방 보석 등 돈 많은 ‘범털’ 피고인과 브로커가 많이 활용하는 제도는 공교롭게 인권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공정하려면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