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시위대, 의사당 6시간 점거… 수도 비상사태 선포

입력 2016-05-01 18:21 수정 2016-05-01 21:23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30일(현지시간) 수도 바그다드 ‘그린존’ 내 국회의사당 건물 안에서 정치권 부패척결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철통 보안을 뚫고 벽을 넘거나 부순 뒤 진입해 이라크 국기를 흔들며 정부를 규탄했다. AP뉴시스

반정부 시위대 수백명이 30일 이라크 바그다드 ‘그린존’을 뚫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했다. 이라크 국기를 흔들면서 사진을 찍고 물품을 부쉈다. 밤이 새도록 거리에 앉거나 누워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영국 BBC방송은 1일 이들의 의사당 점거 상황을 전하며 이라크군 대변인 사아드 만 준장의 말을 인용해 “바그다드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보도했다.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미군의 특별경계구역에서 유래한 그린존은 의사당, 정부청사, 군사령부, 외국공관 같은 주요 시설이 모인 곳이다. 평소 철통 보안을 자랑하지만 시위대는 별다른 충돌 없이 진입해 6시간 동안 의사당을 점거하고 정부와 의회를 규탄하는 슬로건을 외쳤다. 이후 인근 이흐티팔라트 광장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총리는 지난 3월 말 정치권 부패와 종파 갈등을 봉합하겠다며 전문 관료 출신이 포함된 ‘개혁 내각’ 후보자 명단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해가 엇갈린 의회가 내각 승인기한인 열흘을 넘기면서 시민들 사이에선 불만이 커졌다. 한 달여간 이어진 정부와 반정부 시위대의 갈등은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42)가 촉발시켰다.

강경파인 알사드르가 나자프에서 “정부와 의회의 기득권 세력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과 부패 타파를 하지 않으면 나의 지지자들이 관공서에 쳐들어갈 것”이라고 연설하자마자 시아파 신도 수백명이 그린존으로 몰려갔다. 장벽과 철조망을 무너뜨리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점거시위를 벌인 것이다. 일부는 의원들의 자동차를 부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를 발사했다. 미국대사관 주변에선 허공을 향한 경고사격도 이어졌다.

BBC는 “이 과정에서 수십명이 부상했지만 대형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알아바디 총리는 “바그다드가 정부군의 완벽한 통제에 들어갔다”고 발표하고 지정된 장소에서 집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라크는 최근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처 문제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 세력의 종파 갈등이 촉발될 위기에 놓여있다.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모하메드 사데크 알사드르의 아들이다. 사데크 알사드르는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반정부 투쟁을 이끈 투사로도 유명하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