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업 수준 살균제 제조·유통 “정부 10년간 뒷짐” 비판 목소리

입력 2016-05-01 17:54 수정 2016-05-02 00:39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1일 ‘옥시크린’ 등 옥시 제품이 진열돼 있다. 시민단체와 약국 등이 옥시 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와중에 일부 대형마트에선 옥시 생활용품 판촉행사가 열렸다. 뉴시스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제조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사실이 공개되면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일 서울중앙지검 가습기살균제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검사)에 따르면 사망자 14명을 포함해 27명의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세퓨’는 당시 제조업체였던 버터플라이펙트 대표 오모씨가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제작해 판매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독성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 살균제 성분을 물에 일정 부분 넣고 향료만 첨가하면 쉽게 제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별한 기술이 없던 오씨도 인터넷 등을 뒤져 가습기 살균제 제조법을 배웠다.

오씨와 같은 비전문가가 독성물질을 이용해 생활용품을 만든 뒤 10년 넘게 시장에 유통시켰지만 정부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1차적으로 화학물질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 등 피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뒤늦게 역학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진상조사와 피해자 구제에 소극적이었다. 환경보건 업무의 관할 문제를 놓고 당시 환경부와 복지부가 떠넘기기를 하면서 실태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을 확인하고 제품 수거 명령 및 판매 중단을 내리면서도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은 발표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폐질환 외에 비염과 기관지·심혈관계 질환 등 문제를 호소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었다. 환경부는 지난 29일에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 범위를 폐질환 이외에 비염, 기관지염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 문제가 공식화된 지 5년이 지난 뒤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정확한 피해자 판정을 위한 실태 파악과 역학조사 등에 시간이 걸리다보니 대책 마련도 늦어졌다”면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추적 조사해 피해조사 범위도 확대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옥시레킷벤키저(옥시)는 2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현 대표가 직접 나서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적극적인 보상 방침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옥시가 언론을 상대로 간담회를 여는 것도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이후 5년 만이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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