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2일 울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와 유공 코끼리(현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그는 울산 골문을 지켰다. 프로 데뷔전이었다. 그로부터 24 시즌 동안 그는 한결같이 골문을 지키며 706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53경기(2004년 4월 3일∼2007년 10월 14일) 연속 무교체 출전 등 초인적인 능력을 뽐냈다. 그러나 이번 시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전설’ 김병지(46)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살아 있는 전설’ 김병지를 만났다. 그는 ‘스포츠마케팅어워드코리아 2016’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거기에 왔다. 그에게 대뜸 “은퇴하는 것이냐”고 물어 봤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복귀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현재 몸 상태는 아주 좋아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귀를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김병지는 선수로 뛰고 있지 않는 요즘 더 바쁘다고 했다. “아주대에서 후배들과 함께 운동하며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아주대 다음엔 홍익대를 찾아갈 겁니다. 대학들을 돌며 재능기부를 하는 거죠. 요즘 더 보람찬 일을 추진 중입니다.”
더 보람찬 일은 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김병지아이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왜 재단을 설립하려는 걸까? 그의 대답이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에 너무 찌들어 있어요.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운동과 문화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집사람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김병지는 유망주들에게 장학금만 지원하는 그런 재단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축구와 미술을 동시에 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축구 지도를 담당하고, 홍익대 섬유미술학과를 나온 아내 김수연 씨는 미술 지도를 담당할 예정이다. 그가 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아내는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스타플레이어들은 대개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김병지는 다르다. 그는 축구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지난달 19일엔 K리그 홍보대사로 위촉돼 한국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
김병지는 올해 중부대 골프지도학과에 입학했다. 뒤늦게 향학열을 불태우는 데엔 이유가 있다. “제 인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포츠 산업과 행정, 마케팅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김병지의 꿈은 축구 구단주가 되는 것이다. 20대 중반부터 꾸기 시작한 꿈이다. “24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며 느낀 게 참 많았어요. 철학과 비전, 능력을 갖춘 구단주만이 팀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습니다.”
김병지에게 언제쯤 구단주가 되어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60세쯤엔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2부나 3부 팀 구단주가 돼 있을 것 같네요. 하하하…. 허황된 꿈이라고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연봉 960만원을 받을 때 동료들에게 ‘언젠가는 연봉 2억원을 받은 선수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웃더군요. 하지만 결국 연봉 2억원을 받았습니다. 6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을 땐 ‘700경기 출장에 도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들 고개를 젓더군요. 결국 700경기 출장의 꿈도 이뤘잖습니까.”
김병지는 아직 2년 정도는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말끔한 양복을 차려 입은 김병지에게선 선수가 아니라 행정가의 체취가 느껴졌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K리그 수문장 ‘전설’ 아이들 수문장 된다
입력 2016-05-0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