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이 떨어진 것같이 느껴질 때 붕어, 잉어 같은 민물고기나 뱀을 푹 고아 먹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왠지 새 기운이 솟는 것 같아 자꾸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민간요법에 섣불리 의존하면 되레 콩팥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물고기와 뱀 쓸개에 들어있는 독성이 콩팥을 손상시켜 급성신부전을 유발할 있다는 경고다.
서울K내과 김성권 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최근 붕어·잉어를 고아 먹고 구토와 더불어 설사를 하다 오줌이 나오지 않아 괴롭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설사와 구토를 하고 소변도 잘 나오지 않는 증상으로 최근 병원을 찾아 응급처치를 받은 최모(61), 이모(57)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진찰결과 최씨는 이틀 전 대형 잉어의 쓸개를 날로 먹은 후 탈이 났다. 이씨는 기력 회복을 위해 붕어 다섯 마리를 달여 먹은 후 심한 설사와 혈뇨 증상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력 증진에 좋고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민간약으로 많이 쓰이는 뱀 쓸개를 먹고 탈이 나는 환자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한대석내과 한대석 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할 때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뱀 100여마리 쓸개를 소주에 담가서 만든 쓸개주를 마신 36세 여자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 환자는 당시 갑작스런 구토와 설사, 이에 따른 탈수로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했다가 급성신부전 및 급성간염 진단을 받았다. ‘뱀의 쓸개가 몸에 좋다’는 근거 없는 속설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웅담(곰쓸개), 우황(소쓸개) 등 한약재로 쓰이는 동물과 어류 쓸개의 효능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일까? 뱀뿐만 아니라 잉어, 붕어 등 민물고기의 쓸개를 날로 먹고 급성신부전을 일으키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급성신부전은 신장 기능이 수 시간에서 수일에 걸쳐 급격히 저하되는 증상을 가리킨다. 신장 기능저하로 몸속에 질소 노폐물(요독)이 그대로 쌓여 고질소혈증을 일으키고 체액 및 전해질 균형에도 이상이 발생한다.
물고기(초어)의 쓸개가 급성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1970년대 중반 대만과 태국 의료진에 의해 국제 학술지에 처음 보고됐다. 김성권 원장은 “상대적으로 증상이 가벼워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같은 동양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도 민물고기와 뱀 쓸개로 인한 피해사례가 상당히 많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 민물고기 등의 쓸개즙 독성은 알코올 종류인 ‘사이프리놀(Cyprinol)’ 성분과 담즙산을 구성하는 ‘치노데옥시콜릭산(Chenodeoxycholic acid)’ 성분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물질들은 열에 견디는 힘이 강해서 끓이거나 달여도 독성이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포유류는 쓸개즙이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한 뒤 장(腸)에서 다시 흡수된다. 따라서 쓸개즙의 독성이 약해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반면 민물고기와 파충류의 쓸개즙은 장에서 재(再)흡수되지 않고 바로 대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독성 물질이 약해질 이유가 없었다. 그 결과 잉어와 붕어, 뱀의 쓸개를 사람이 복용하면 그 독성이 콩팥 조직으로 침투해 악영향을 주게 된다. 쓸개는 전통적으로 한의학에서 야맹증 치료나 이뇨제, 보신 등을 위해 사용돼왔다. 다만 한의서인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도 남용 시 해로울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김 원장은 “식품으로 쓸개를 어쩌다 조금 먹는 것은 무방하지만, 대형 어종이나 뱀의 쓸개를 통째로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사구체신염 등으로 콩팥기능이 약한 사람들은 민물고기와 뱀 쓸개를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잉어·뱀 쓸개로 몸 보신해볼까? 함부로 먹으면 급성신부전 위험!
입력 2016-05-02 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