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내 주머니 속의 동전

입력 2016-05-01 19:08

‘삐익.’ 오전 7시45분, 지하철 개찰구에서 신용카드를 꺼낸다. 금액 확인은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계단을 올라간다. 콩나물시루를 벗어나 거리로 나오니 봄바람이 화사하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이번엔 스마트폰으로 결제.

점심식사에도 신용카드와 스마트폰만 들고 나선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젊은 남녀 4명이 계산대 앞에 차례로 줄을 섰다. 각자 신용카드로 밥값을 계산한다. 동전까지 맞춰서 ‘더치페이’를 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나 보다.

“마포 먹자골목이요.” 저녁 약속에 늦어 택시를 잡았다. 기본요금보다 조금 더 나오는 거리라 만원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요즘 현금 손님은 거의 없는데. 잔돈 없으니 그냥 카드로 결제해 주세요.”

늦은 저녁, 침대에 누워 하루를 되감아 봤다. 지갑에 있던 현금 5만3000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언제 생겼는지 모르지만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100원짜리 동전 2개는 며칠째 달그락거리고만 있다.

1970년 11월 30일 처음 발행된 100원짜리 동전은 구리와 니켈을 합금한 백동 5.42g으로 만든다. 연간 600억원(2011∼2015년 평균)가량이 동전 제조에 들어간다. 그런데 시중에 도는 동전은 항상 부족하단다. 동전 환수율(발행액 대비 환수액)은 500원 동전 9.0%, 100원 21.7%, 50원 21.4%, 10원 8.5%에 그친다. 돌지 않는 동전을 만드는 데 큰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2015년도 지급결제보고서’를 내면서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전 대신 가상계좌와 연결된 선불카드에 거스름돈을 입금해주는 방식 등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지폐조차 발행하지 않는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도 가능하다. 어차피 우리 국민이 지급·결제수단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 신용카드(39.7%, 지난해 기준)다. 현금(36.0%)을 앞질렀다.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나라도 꽤 있다. 스웨덴은 재래시장, 길거리 상점은 물론 교회 헌금도 신용카드나 모바일뱅킹을 이용한다. 지난해 스웨덴 전체 소비 중 현금거래 비중은 20%에 불과했다고 한다. 덴마크는 소매상점에서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지난해 9월부터 1000유로 넘는 물건을 현금으로 살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왜 앞다퉈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것일까.

현금 없는 사회는 화폐 발행비용 절감과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매력적인 장점을 갖는다. 현금이 사라지니 탈세나 돈세탁은 쉽지 않다. 디지털 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새로운 산업의 출현도 예상된다.

종이나 금속 대신 디지털 정보가 화폐,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월급날, 아버지가 들고 왔던 두툼한 노란색 봉투를 기억하는 세대도 그리 많지 않다. 은행 계좌에 찍히는 숫자, 신용카드 IC칩에 담긴 정보가 월급이고 자산이라고 해서 서운하지도 않다.

그런데 지울 수 없는 걱정이 하나 있다. 경제활동이 낱낱이 데이터로 쌓이고, 권력을 쥔 누군가가 이걸 악용하면 어떡하나. ‘좋은 쇳덩이’라도 녹이고 제련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쟁기가 되기도 하고, 칼이 되기도 한다. ‘빅 브러더’가 모든 금융정보를 장악하고 통제하지 못하도록 견제·감시할 방법을 찾는 게 우리 시대의 큰 숙제가 됐다.

김찬희 사회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