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선별적 양적완화’ 방침에 맞서 한국은행이 원칙론을 제기했다.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이어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은 윤면식 부총재보는 29일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 재정의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 부총재보는 한은에서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진 가운데 최고책임자다.
정부가 먼저 재정을 풀고,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다음에야 한은이 나설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선제적으로 국책은행의 여력을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파장이 커지자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말씀을 반박한 게 아니다”며 “어쨌든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해봐야지”라고 말했다.
선별적 양적완화는 조선·해운 부실기업 살리기에 필요한 자금만큼만 한은이 새로 돈을 찍어 국책은행을 통해 해당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다. 총선 기간 새누리당이 내세운 ‘한국형’ 양적완화보다 축소됐고 정부 돈을 쓰지 않지만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은 노조는 “(해운·조선 등) 특정 부분을 위해 돈을 찍는 것은 21세기엔 짐바브웨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야권과 금융시장도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양적완화를 고려할 정도라면 대한민국 경제가 비상상황”이라며 “(대통령이) 지금까지 정책은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또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대변인도 “우리 당은 부실기업에 돈을 풀겠다는 정부 정책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정부가 구조조정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IBK투자증권은 이날 거시경제보고서에서 양적완화가 제기된 배경은 “내년 대선 등의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양호한 성적표를 얻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라며 “야당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범위도 제한돼 실행되더라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IMF 외환위기 당시 한보철강이나 삼성자동차 등의 사례처럼 치밀한 계획 없는 자금 지원은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다만 투자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부분에는 구조조정 등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이것도 “미래에 대한 큰 그림과 정책적 결단의 문제이지 꼭 돈을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우성규 임성수 김지방 기자
mainport@kmib.co.kr
논란 커지는 청와대發 ‘양적완화’
입력 2016-04-29 17:56 수정 2016-04-30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