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위해 침묵하는 다수… 진실을 외치는 소수… 누가 민중의 적인가!

입력 2016-05-01 17:41
세계적인 스타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독일 샤우뷔네 극장의 연극 ‘민중의 적’. LG아트센터 제공

민중의 선택은 늘 옳은 것일까? 대립하는 가치가 있을 때 소수의 의견은 틀린 것일까? 근대 연극의 거장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1882)은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인 ‘다수결’의 문제를 질문하는 한편 집단 이기주의 앞에서 정의의 가치를 강조한다.

노르웨이 시골의사 스토크만은 지역 온천수가 근처 공장 폐수에 오염됐다는 사실을 밝히고 온천 개발계획 수정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형을 비롯한 정치인과 언론은 지역의 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를 사실을 은폐하려고 시도한다. 또 주민들을 선동해 스토크만을 ‘민중의 적’으로 규정하고 마을에서 쫓아내려 한다. 스토크만은 “진실의 최악의 적은 침묵하는 다수다.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다수, 진실을 외치는 소수, 누가 민중의 적인가!”라며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한다.

‘민중의 적’은 입센이 사회의 부패와 부도덕을 폭로했던 전작 ‘인형의 집’(1878), ‘유령’(1881)이 보수파로부터 맹비난을 받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쓴 작품이다. 출간된 지 134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인지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오는 26∼28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 제작 ‘민중의 적’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48) 연출로 2012년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에서 초연됐다. 이후 런던 바비칸센터, 미국 BAM(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 등 전 세계 유수의 공연장과 페스티벌에 초청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7년째 샤우뷔네 극장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오스터마이어는 세계 연극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연출가. 국내에서도 그가 연출한 ‘인형의 집-노라’(2005), ‘햄릿’(2010)이 공연돼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전통을 흔드는 파격’이 트레이드마크인 오스터마이어는 입센의 원작을 현대로 가져오는 한편 극중 주인공들을 다소 젊게 설정했다. 지적이며 정치적으로도 깨우친 현대 젊은이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는 스토크만이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에서 관객을 토론자로 끌어들임으로써 원작의 주제를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해외 공연 중 관객과 배우들 사이에 뜨거운 토론이 펼쳐지곤 했는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화난 관객과 배우가 30분 넘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한국 관객들이 얼마나 토론에 참여할지도 관심이다.

오스터마이어는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라며 “이런 연극적 경험을 통해 현실 속에서 ‘노(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 일상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