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안경 쓴 작은 거인 ‘박세웅’, 24년 ‘무관의 한’ 풀까

입력 2016-04-30 04:00
롯데 자이언츠 투수 박세웅이 지난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프로야구 홈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겐 오랜 향수가 있다. 바로 안경 낀 우완 선발투수다. 롯데 팬들은 안경 낀 우완 투수가 혜성같이 나타나 오랜 숙원인 우승을 이루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제 롯데 팬들은 박세웅(21)이라는 젊은 투수를 보며 이런 소망을 꿈꾸고 있다.

살제 롯데는 안경 낀 우완 투수가 우승을 일궜다. 1984년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은 팀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안경을 매만지며 포수 사인을 본 후 강속구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모습에 팬들은 열광했다. 최동원은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혼신의 힘으로 혼자 4승을 거뒀다. 한국시리즈 4승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이다. 당시 김시진, 김일융, 이만수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했던 삼성을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최동원의 롯데가 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에는 염종석이라는 안경 낀 우완 에이스가 나왔다. 당시 신인이었던 염종석은 그 해 17승9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싹쓸이했다. 지금까지 롯데에서 신인왕을 배출한 것은 염종석이 유일하다. 그의 예리한 슬라이더는 당대 최고 투수였던 선동열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롯데는 염종석을 앞세워 삼성, 해태 타이거즈, 빙그레 이글스를 차례를 꺾는 파란을 연출하며 한국시리즈 정상에 섰다.

이후 롯데는 24년이 지나도록 무관에 그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등 2000년대 탄생한 신생팀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기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팀이라는 굴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최동원과 염종석의 모습이 보이는 선수가 나타났다. 바로 박세웅이다. 박세웅은 지난해 5월 kt 위즈에서 트레이드됐다. 최동원 염종석과 똑같이 우완 정통파에다 피하지 않고 상대와 정면승부를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에 곧바로 차세대 롯데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다. 다만 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다. 지난해 성적은 31경기 2승11패, 평균자책점 5.76에 그쳤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몸을 만들고 난 후 에이스의 위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70㎏ 초반이던 체중을 80㎏까지 불렸고 투구폼을 더 간결하게 가져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덕분에 직구 시속도 150㎞대로 올라갔고,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박세웅은 올 시즌 4경기에 나와 3승1패,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 중이다. 롯데 투수 중 최다승이다. 구단도 그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지난 5일 홈 개막전 선발로 박세웅을 내세웠을 정도다. 염종석은 “박세웅이 잘 하면 하늘에 계시는 최동원 선배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했다. 박세웅도 “최동원 선배님처럼 던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박세웅은 형제 투수로도 유명하다. 동생 박세진(19)이 kt 투수다. 형제는 지난 27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만났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형제가 서로 다른 팀에서 등판했다. 다만 박세웅이 6회 강판된 후 동생이 8회에 마운드에 올라와 형제간 맞대결은 불발됐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