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322장 (통 35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17장 14∼27절
말씀 : 아테네에 이르러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던 바울은 그 성에 가득한 우상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테네는 ‘사람 한 명 만나기보다 신 하나를 만나기가 더 쉽다’고 말할 만큼 우상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 된 심정으로 바울은 동분서주하며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평일에는 시장(아고라)에서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증거했습니다(롬 1:14∼15).
이 과정에서 바울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과도 신학 논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자연신론, 즉 신이 창조는 했지만 그 후엔 법칙대로 움직이도록 놓아두고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토아 학파는 모든 생명체 속에 신이 있다는 범신론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라며 바울의 강연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적인 호기심에서 발로된 경박한 태도였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청취는 결코 바른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강연을 위해 집회 장소인 아레오바고에 선 바울은 그들 가운데 있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치는 특이한 제단 이야기를 설교의 접촉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4세기 전 에피메니데스라는 현자가 아테네에 퍼진 전염병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절대자’에게 제단을 쌓음으로 퇴치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는데, 바울은 그 막연한 절대자가 누구인지 그들에게 알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이 신이 아테네에 있는 수만의 신들과 달리 유일하신 한 분(단수)임을 밝힙니다. 이것은 신은 그 숫자가 많고 또 무언가 부족해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는 스토아 철학의 범신론과 반대되는 신관입니다. 또 이 신은 만물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이시며 언제나 가까이 계셔서(27), 인간의 모든 생활을 주장하시는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에피쿠로스 철학의 ‘신은 멀리 떨어져 있고 개입하지 않는다’는 이신론과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26∼27절엔 선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에게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정해 두셨습니다. ‘연대’란 시계적인 의미의 시간(크로노스)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사건적인 의미의 시간(카이로스)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각 족속들에게 일어나는 전쟁 혁명 경제 등 커다란 사건을 통해 거주 지역이 흩어지거나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각 족속에게 ‘연대’와 ‘경계’를 정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족속들을 이동시키고 계십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모든 족속에게 구원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들어온 미전도 족속에게 복음을 전할 분명한 의무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교만함이 아닌 겸손과 경외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지현 목사(서울 다음세대교회)
[가정예배 365-5월 1일] 바울의 설교
입력 2016-04-29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