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시대, 유대인들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500년 넘게 유대인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오면 로마 식민지에서 겪고 있는 설움과 모욕, 궁핍과 시련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유대인들의 삶을 규정했고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인내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예수라는 인물이 갑자기 나타났고, 그가 그리스도라는 이야기가 바람결에 들려왔습니다. 시골뜨기 청년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면 어떡하지. 사람들은 불안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수전절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난 예수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요? 헷갈리게 하지 말고 만일 그리스도가 맞다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시오(24절).
사실 예수님이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굳이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25절). 유대인들이 요구한 것은 예수님의 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직접 우리 눈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증명해야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라고 말해도 유대인들이 믿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분명한 증거라고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 이름으로 일을 하는 것이 참이 아니라면 천벌을 내리든 그 일을 그르치든 하나님의 이름이 도용되는 것을 막으실 것인데,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자유롭게 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죄인의 죄를 깨우쳐주고 죽은 이들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눅 4:18∼19). 한 마디로 그것은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명서’를 원합니다. 21세기 무신론 시대의 ‘유대인들’은 2000년 전 유대인보다 더 강력하고 영악하게 우리에게 대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증명해보라. 그리스도 증명서를 내놔봐라. 이 영악한 시대에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가 하셨던 일을 이어받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바로 생명의 일, 사람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일입니다.
오늘 그것은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하여 억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일터에서 아무 대책 없이 쫓겨나 길거리에서 호소하는 이들을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불의한 권력에 아무 항변도 못한 채 고난 받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항할 용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으로 신음하는 오늘의 인간들을 깨워서 더불어 사람 사는 생명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 증명서를 요구하는 이 무신론 시대에 주님이 행하신 생명의 일을 실행함으로써 이 시대에 예수가 곧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약력=△한신대 신대원 졸업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 본부 정의평화선교 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국장 역임
[오늘의 설교] 그리스도 증명서
입력 2016-04-29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