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주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손

입력 2016-04-29 18:06 수정 2016-05-15 18:24
그 청년은 흔들리고 있었다. 앞으로 쏠렸다가, 뒤로 쏠렸다가. 검은색 백팩에 카키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몸이 앞뒤로 흔들리지 않았다면 눈길이 머물지 않을 20대 중반 청년이었다. 출근시간 서울지하철 9호선 객차 안. 청년은 통로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어쩐 일인지 서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청년에게 시선이 멈췄다.

어느 순간 그는 바닥에 ‘퍽’ 주저앉았다. 힘들어 보였다. 출입구 옆에 몸을 기대고 있던 한 여성이 청년 옆에 무릎을 굽혔다. “괜찮아요?”라고 묻곤 등을 두드리고 어깨를 주물러줬다. 50대 초반으로 나이를 어림해 보았다. 이어 청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청년의 양팔을 끌어 자기 자리에 앉혔다.

자리에 앉은 청년은 앞으로 머리를 연신 꾸벅거렸다. 노량진역에서 문이 열렸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헝겊가방에 손을 넣는가 싶더니 그 청년의 무릎 위에 뭔가 올려놓고 내렸다. 여성이 남긴 것은 편의점에서 파는 0.5ℓ 물병이었다. 낯선 청년을 다독이는 아주머니, 아들 같은 청년에게 자리를 내주는 아저씨, 물병을 꺼내놓고 간 청년 또래의 아가씨….

인구 1000만명 안팎이 사는 거대 도시 서울의 지하철. 서로 밀치거나 밀리는 장면이 익숙해서일 것이다. 불현듯 마주친 이들의 ‘선의’에 경이와 가까운 감정이 일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고 하더라도 선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1725∼1790)가 저서 ‘도덕감정론’ 서두에 쓴 것이다.

스미스의 말대로 선행을 보면 즐거워진다. 스미스는 역작 ‘국부론’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킨다고 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이기심을 가리킨다. 반면 그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인 선의, 즉 이타심을 강조한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부나 명예가 아니라 선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라고 했다.

공감 능력을 강조했고, 이 공감이 도덕의 근원이라고 했다. 도덕철학자로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가 웅변한 견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돕고자 하는 이 선의가 사회를 존속시키는 ‘또 다른’ 손이 아닐까. 실제 우리가 아는 자발적 기부와 사회적 연대의 시발은 이런 작은 선의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지 않은가.

2014년 시작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근육이 경직되는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이다. 미국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던 코리 그리핀이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친구를 돕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환자의 고통을 느낀다는 의미로 얼음물을 끼얹거나 기부를 하고, 다음 참가자 3명을 지목하는 방식이다.

‘3의 법칙(the rule of 3)’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활용한다. 3명이 같은 행동을 하면 관망자들이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의식하고 동참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도 비슷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참가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3명을 지목했다. 동참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도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봄, 공장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쌍용자동차 두 해고노동자를 위한 모금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대의 기금 1만원을 내고 3명의 지인에게 SNS로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작은 선의가 다른 이의 동조를 이끌어내고 다수의 참여를 불러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릴레이 연대는 해고노동자에게 용기를 줬을 것이다.

현재 상영 중인 일본군 위안부 영화 ‘귀향’의 제작과 흥행도 비슷하다. 소액 기부로 제작비가 마련됐고, 활발한 ‘함께 보기’운동으로 350여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우리 세대의 반응은 청춘을 유린당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들과 딸을 잃은 가족들.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평범한 시민들이 있다. 이들의 꾸준한 관심과 봉사는 가족들에게 힘이 된다.

지하철에서 그 장면을 본 날, 나는 노상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는 이에게 인사와 함께 음료수를 건넸다.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3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그 날 같은 장면을 본 승객들이 직장, 학교, 거리에서 누군가에게 비슷한 호의를 베풀었을 것이다. 선의도 전염성이 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손’이다.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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