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브로커 이씨 수사 중… ‘정운호 재판 로비’ 캘까

입력 2016-04-29 00:55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재판 로비 스캔들’ 핵심 인물로 지목된 브로커 이모(56)씨가 3개월 전부터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사안 자체는 정 대표와 관련이 없는 이씨의 별도 범죄 사건이다. 그러나 검찰이 현직 판사를 직접 접촉한 이씨의 신병을 확보하면 정 대표를 둘러싼 법조 비리 의혹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이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그는 인허가 관련 청탁 명목으로 9억원을 챙기고, 유명 가수 동생에게 3억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검찰이 지난 1월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하자 종적을 감춘 상태다.

검찰은 조속히 이씨를 검거해 우선 기존에 입건한 혐의를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28일 “현 수사 대상은 이씨 본인의 청탁 의혹에 관한 부분”이라며 “정 대표 관련 수사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 대표가 법원과 검찰 모두를 대상으로 구명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나오는 상황에서 검찰이 핵심 인물인 이씨의 개인 비리만 수사하는 선에서 그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법원도 정 대표 측의 접촉 시도 주장이 제기된 판사들을 상대로 소속 법원장을 통해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다. 사법부 인사·행정을 총괄하는 고영한(61)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현재는 의혹 수준이지만 사실이 드러나면 철저히 진상 조사를 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브로커’ 이씨는 누구인가…커지는 논란

이씨는 정 대표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정해진 당일 재판장인 L부장판사에게 식사 접대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L부장판사는 “사건 배당 2주 전 이씨가 연락을 해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며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라고 해명했다.

정 대표 사건이 항소심에 배당된 날은 지난해 12월 29일이다. L부장판사의 해명에 따르면 이씨가 연락한 날짜는 같은 달 15일 전후다. 1심 선고는 그달 18일이었다. 정 대표의 1심 선고 며칠 전 이씨가 차후 항소심을 맡게 될 재판장과 저녁 약속을 잡았고, 배당 당일 회동에서 정 대표 사건 얘기를 꺼냈다는 의미다. L부장판사는 다음 날 사건 배당 사실을 알고 바로 회피 신청을 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형사항소부는 총 6곳이다. 정 대표의 상습도박 혐의는 이 중 무작위로 1곳에 배당된다. 식사 약속을 잡은 뒤 사건이 공교롭게도 L부장판사에게 배당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씨가 배당 정보를 미리 파악했거나, 약속을 잡은 날이 L부장판사 해명과 다를 수 있다는 의심도 나온다.

건설업 등에 종사한 이씨는 한때 유흥업소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판검사 등 법조계 인맥을 과시하고 다녔다는 말도 있다. 그는 2007년 회삿돈 32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이씨는 이외에도 10여건의 송사에 휘말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L부장판사는 사기 전과가 있는 정모(64)씨와 지난해 11월 미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골프 강사인 정씨는 골프 관광을 빙자해 재력가 A씨를 중국으로 유인, 현지 도박장에서 거액의 빚을 지게 한 뒤 5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3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집행유예 기간에 L부장판사와 여행을 간 것이다.

L부장판사는 “정씨와 함께 미국 여행을 한 건 사실”이라며 “그의 집에 머물긴 했지만 골프나 도박은 하지 않았다. 전과가 있는지 몰랐고, 사건 관련 청탁을 받은 일도 없다”고 해명했다.

법원 측은 “판사의 개인적 여행마저 의혹으로 치부되고 있다”며 “L부장판사는 이씨와 식사한 다음 날 바로 사건을 재배당하며 공정성을 기울였다. 오해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변회 “논란 폭넓게 확인할 예정”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 파악에 착수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정 대표와 수임료 등의 분쟁을 하고 있는 최모 변호사에게 각각 수십개 항목의 질의서를 보냈다”며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폭넓게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질의서 회신기한은 다음 달 13일이다. 서울변회는 정 대표 구명 로비 과정에 거론된 전관 변호사들도 조사할 계획이다.

양민철 이경원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