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주창한 ‘선별적 양적완화’와 관련, 조선·해운업만을 위한 구조조정 자금 마련을 위해 중앙은행 화폐발행 권한이 동원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돈을 찍어서라도 자금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당하고 있는 한국은행은 공식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지만 “조선업 해운업 이후 건설업이 어려워지면 또 돈을 찍을 텐가”라는 푸념이 나왔다. 양적완화는 화폐 발행을 통해 경제 전체에 돈을 돌게 하고 투자가 이뤄지게 하는 것이지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아니다. 전 국민이 화폐가치 하락을 감수하면서 영업 부실과 분식회계 등으로 위험에 처한 특정 기업 특정 분야를 살리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박 대통령의 “국책은행의 지원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발언은 사실상 한은이 산업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해 자본금을 출자하거나 채권을 사줘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산은은 대우조선에 4조원, STX조선해양 1조9000억원, 현대상선 1조2000억원, 한진해운 7000억원 등의 부실기업 여신을 안고 있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운업계까지는 감당할 여력이 있지만 조선업으로 구조조정 폭이 확산될 경우 자본 확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은이 산은에 직접 출자를 하거나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는 방식의 자본 확충 가능성을 언급했다. 혹은 한은이 일반 기관투자가들처럼 산업금융채권을 사는 시나리오도 있다고 했다. 어떤 식이든 한국은행이 돈을 새로 찍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회의체를 구성해 다음달부터 ‘선별적 양적완화’를 본격 논의한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도 필요하지만 재정 투입은 쏙 빼고 한은만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정책은 특정 산업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대단한 신용 긴축이 없다면 누구에게나 보편적 효과가 돌아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구조조정 측면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구조조정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원 조달만 한국은행에 요구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를 보겠다고 달려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구조조정의 핵심을 채권단과 채무기업이 맡고 정부는 도움을 주는 역할에 그친다면 실업 구제나 지역경제 활성화 분야에서 정부가 어떻게 재정을 투입할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있어 한은이 검토해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금융중개지원 대출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금융중개지원 대출은 한국은행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시중은행에 저리로 지원하는 자금을 말하는데, 한은법 개정 없이 ‘구조조정에 필요한 경우’ 식으로 규정을 추가하면 지원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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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28 17:54 수정 2016-04-28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