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27일(현지시간) 외교안보 분야 정책을 공식 발표했다. 이전 유세에서 즉흥적으로 얘기하던 것과는 무게감이 다른 자리였다. 그러나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만 추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의 외교정책 구상을 놓고 외신들은 일제히 “극히 이기적인 외교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워싱턴DC 메이플라워호텔에서 가진 외교정책 연설에서 ‘동맹국의 팔을 비틀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받아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방어하는 나라들이 적정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으면 스스로 방어하게끔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분담금이 적으면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트럼프는 구체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우 28개국 중 고작 4개국만 의무 사항인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의 방위비를 지출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적정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기 위해 NATO 및 아시아 우방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이나 일본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그는 “중국은 우리한테 어마어마한 무역적자를 안기면서도 미국을 존경하지 않는 나라”라고 지적하면서 대중 무역적자를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더 잘 통제하도록 만들겠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의 차별화에도 방점을 뒀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때의 ‘약한 미군’ 대신 ‘강한 미군’을 건설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쿠바 방문 때 공항 영접과정에서 홀대를 받은 점을 지적하며 “이런 나라들이 미국을 존경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중동 정책에 있어서도 오바마 행정부와 갈등이 컸던 이스라엘, 이집트와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했다. 대신 미국이 핵 문제를 타결지은 이란에 대해선 강경 입장을 밝혔다. 특히 그는 “지난 1월 이란군이 미 해군 선박을 억류해 미군을 무릎 꿇린 굴욕적 장면을 잊을 수 없다”면서 미국에 도전하는 나라들을 좌시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2012년 리비아의 벵가지 미 영사관 피습 사건을 미 외교정책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뽑기도 했다. 이는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발표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부동산업자한테는 모든 게 임대료 협상문제로 보이는가 보다”면서 “비즈니스 협상이나 TV쇼에서는 최강수를 뒀다가 물릴 수 있어도 외교협상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꼬집었다. BBC는 “외교를 마치 비즈니스하듯 흥정(deal)을 해서 이문을 남기겠다는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가디언도 “동맹국을 비난하면서 동맹국을 지키겠다고 하는 건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내 반응은 엇갈렸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구체성이 없는 한심한 외교정책”이라며 “레이건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밥 코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했고,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도 “워싱턴DC의 엘리트들은 싫어하겠지만 유심히 들여다볼만한 가치가 있는 정책”이라고 호평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노골적‘캡틴 아메리카’
입력 2016-04-28 18:37 수정 2016-04-29 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