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있는 교육 <상>] 쉼 없이 학원 다니는 사이… 영적·육체적 성장은 멈춘다

입력 2016-04-28 18:41 수정 2016-06-02 11:38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원 수업을 마친 청소년들이 27일 오후 10시 삼삼오오 길을 나서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시험기간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구분이 없다. 오전부터 학원에 가서 문제풀이에 몰입한다. 김군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짬을 내서 놀 수 있는 시간은 집과 학원, 독서실을 이동할 때가 전부다.

김군은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쉴 땐 쉬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다들 이렇게 한다”며 “부모님 기대가 큰데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일요일도 쉼 없이 공부, 신음하는 자녀들=요즘 학생들의 스케줄을 들여다보면 쉼 없는 강행군 그 자체다. 평일부터 주말까지 일주일 내내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일요일마저 학원에 가는 것은 얼마 전만해도 고3이나 고2 학생들만의 이야기였지만 최근에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까지 확대됐다. 학원들의 과열경쟁과 부모들의 삐뚤어진 교육열이 빚어낸 비극이다. 일요일마저 사교육에 시간을 빼앗김으로써 가족과의 대화시간이나 신앙생활마저 실종됐다.

“꿈이나 목표도 없는데 밤늦게까지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어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모(17)군의 하소연이다. 이군은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야자를 하고 주말엔 과외를 받는다. 이군은 “성적이 대학 입학의 절대적인 기준이니 공부는 한다. 하지만 즐겁지도 않고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든다”며 “성적 말고 다른 기준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기독교사모임 좋은교사운동이 2014년 전국 초·중·고 학생 6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원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63%, 중학생의 44%가 일요일에도 학원에 간다고 응답했다. 서울의 경우 일요일에 학원을 찾는 학생의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사교육 열기가 뜨거운 지역일수록 일요일에 쉬지 못하는 학생이 많은 셈이다.

◇쉼 없는 교육, 부모가 만든다=서울 종로구 명신초 교장 이유남(54)씨는 한때 전형적인 ‘강남 학부모’였다. 이씨는 자녀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학습지와 학원으로 꽉 찬 일주일치 학습 일정을 만들어 그대로 실천했다. 일주일 내내 수학 영어 피아노 등 이씨가 원하는 학원을 모두 보냈다. 자녀들은 공부뿐 아니라 사물놀이·리코더 캠프, 피아노 대회, 심지어 교회 성경퀴즈대회에서도 항상 1등을 도맡았다. 이씨는 자녀들의 ‘성과’에 고무됐고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경남의 한 기숙학원에 보냈다. 고등학교 때에는 종합학원과 고액과외를 쉬지 않았다.

아이들이 돌변한 것은 대학 입시를 본격 준비할 때였다. 고3인 첫째 아들이 수능 7개월을 앞두고 ‘공부하기 싫다’며 등교를 거부했다. 고1 딸도 ‘오빠 따라 자퇴한다’고 선언했다. 깜짝 놀란 이씨가 잔소리를 하자 자녀들은 점점 거칠게 변했다. 결국 자퇴한 뒤 우울증을 앓던 아들은 이씨를 안방 구석으로 몰며 위협했고, 대인기피증에 걸린 딸은 방문을 닫고 울며 옷과 책을 찢었다.

이씨는 속죄의 심정으로 부모교육 수업을 들었고 그때부터 매일 자녀를 칭찬하는 문자를 보냈다. ‘가식 떨지 말라’며 비아냥대던 남매도 점차 마음을 열었다. 자녀들은 지금 대학을 졸업해 아들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고 딸은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일한다. 이씨는 “아이의 공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뒷바라지했는데 그게 최선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의 행복한 유년기를 빼앗았다”며 “자녀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라. 부모가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한 길을 찾아낸다. 믿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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