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타이어에 담긴 첨단기술의 세계
입력 2016-04-28 18:29
‘공기가 주입된 원판 모양의 검은 고무 덩어리.’ 통상 자동차 타이어에 대한 인식은 이렇습니다. 일반적인 운전자가 타이어를 선택할 때 차 성능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차량에 최첨단 기술이 접목되고 있는 시대에는 유독 타이어만 옛날 모습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타이어라고 모두 다 같은 타이어는 아닙니다. 아무리 우수한 성능의 차라도 타이어의 품질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제 기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습니다. 타이어에도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타이어 역사 130년=인류는 수천년 전 바퀴를 발명했지만 현재와 같은 공기압 형식의 타이어가 등장한 시기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발명된 초기의 타이어는 쇠바퀴였습니다. 마차에 비해 빠르긴 했지만 지면의 충격이 탑승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다 1888년 영국의 수의사 존 보이드 던롭이 아들의 쇠바퀴 자전거에 고무를 씌우고 그 속에 공기를 넣으며 타이어의 시초가 됐습니다. 고무의 탄력에 공기 압력이 더해지자 승차감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1895년 프랑스의 미쉐린은 세계 최초로 탈부착 가능한 타이어를 개발했고, 1930년대에는 미국 듀퐁사가 합성고무를 상용화해 천연고무를 대체했습니다. 이후 타이어의 재질, 패턴을 개발하는 과정이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전기차 타이어는 다르다=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기차 시장 경쟁도 격화되고 있습니다.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잇따라 전기차를 출시하고 각국 정부는 지원에 나서며 관련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고 있지요. 전기차의 대중화는 머지않은 듯합니다.
전기차는 고출력·저소음·고연비가 특징입니다. 200㎏ 상당의 배터리가 장착되기 때문에 차 중량은 일반 내연기관 차량보다 무겁습니다. 낮은 회전저항과 적은 무게, 저소음 기능을 갖춘 타이어를 장착해야 전기차의 성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이에 타이어 업체들은 전기차 맞춤형 타이어 개발에 속속 나서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28일 “기존에는 일반 타이어를 전기차용으로 성능을 개선해 공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해당 모델의 주요 특징까지 만족하는 전용 타이어를 개발해 납품하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금호타이어가 2013년 4월 최초로 전기차 전용 타이어를 출시하고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2년간의 연구 끝에 나온 ‘와트런’은 전기차에 최적화된 설계가 적용됐습니다. 저소음 기능은 기본이고 강도를 높이는 한편 무게는 가볍게 만들어 내마모성과 접지력을 향상시켰습니다. 금호타이어 자체평가 결과 동일 규격의 일반 타이어 대비 중량은 11% 가볍고, 회전저항은 18% 적으며 구동력은 5% 높게 나왔습니다.
와트런은 르노삼성의 전기차인 SM3 Z.E.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넥센타이어는 기아차 쏘울 EV에 전용 타이어 ‘엔블루 에코’를 납품 중입니다. 타이어 업계 세계 1위인 브리지스톤은 BMW i3에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고, 닛산 리프와 테슬라 모델 S에는 미쉐린의 제품이 들어갑니다.
◇자율주행차 타이어는 공 모양?=자율주행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여기에 적합한 타이어를 만들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우선 운전자 역할이 줄어드는 만큼 안전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과제겠지요.
미국의 굿이어는 최근 열린 제네바모터쇼에서 새로운 타이어 콘셉트를 선보였습니다. ‘이글-360’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 타이어는 공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타이어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제자리에서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물에 맞닥뜨렸을 때 즉각 피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평행주차도 한결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차체의 회전을 최소화면서 차선을 변경하거나 코너를 도는 것도 가능합니다.
공 모양 타이어의 최대 난관은 타이어가 차축에 고정된 상태에서 회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굿이어는 자기부상 방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서스펜션, 스티어링 기어가 자기부상 열차의 자석 코일 역할을 하면서 타이어가 굳이 차축에 고정될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발상입니다. 이 방식이 상용화된다면 승차감과 소음 저감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될 것입니다.
물론 자율주행차에 적합한 타이어에 대한 기준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는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공 모양 타이어도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 개발 열기가 점차 뜨거워지면서 전용 타이어도 잇따라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타이어도 기후변화에 대비=국내 타이어 시장 1위 업체인 한국타이어는 지구온난화로 초래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타이어를 개발했습니다. '부스트랙' 타이어는 지면에 닿는 부분인 트레드를 사방으로 펼쳐진 블록 형태로 만들어 접지력을 강화했습니다. 사막과 같은 모래 지형에서 최상의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알파이크' 타이어는 자동차의 지상고를 높여 험로에서 주파능력을 향상시키도록 설계됐습니다. 트레드 사이사이에 노출된 날카로운 구조물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지형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토록 합니다. 또 물레방아처럼 생긴 '하이블레이드' 타이어는 트레드에 스크루 형태를 새겨 넣어 물속에서도 추진이 가능하게 합니다.
한국타이어는 또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가봉합이 가능한 '실가드' 타이어를 개발했습니다. 외부 충격으로 구멍이 나면 내부에 도포된 특수봉합제가 즉각 구멍을 메워주는 타이어입니다. 아예 펑크 상황에서도 계속 주행이 가능한 타이어도 있습니다. 런플랫 타이어는 타이어 내부 공기압이 '제로'인 상태에서도 시속 80㎞로 달릴 수 있게 합니다. 타이어 내부에 단단한 구조물을 삽입해 강한 압력도 견딜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밖에 금호타이어의 '이-클레브'는 최첨단 센서가 노면 조건을 감지해 타이어 공기압, 교체주기, 도로상태 등의 정보를 수시로 운전자에게 제공합니다. '맥스플로'는 타이어가 발생시키는 고압의 바람을 이용해 빗길 주행 시 노면의 빗물을 스스로 제거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트레드 패턴에 난 미세한 구멍을 통해 기분 좋은 소음을 내고 운전자의 피로를 풀도록 개발된 '로드-비트'라는 이색적인 타이어도 있습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