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용감한 노동자

입력 2016-04-28 17:44

몇 해 전 만난 그 젊은이는 서울의 사립대학에 갓 취직한 교직원이었다. 수백 대 1 경쟁률을 뚫었다고 축하해주는데, 삼성전자와 포스코에도 붙었다고 했다. 대기업에 4곳이나 합격하고 교직원을 택한 터였다. 옆자리에 상사가 있어 그런지 에두르는 그의 설명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삼성이 월급은 많겠지만 안 잘리고 다니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나. 대학이 그런 걱정은 훨씬 적지 않겠나.”

이런 세태는 공무원시험 열풍이 잘 보여준다. 어지간해선 잘릴 일이 없어서 공무원은 정부청사에 침입해 채용시험 성적을 조작할 만큼 매력적인 직업이 됐다. 개인회생 신청자 중엔 의사가 가장 많고, 경쟁이 치열해진 변호사는 부동산 중개에 뛰어들었다. 그래도 의사 변호사가 인기인 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면허 때문이다. ‘고소득 전문직’이던 ‘사’자 직업의 매력은 이제 ‘무정년(無停年) 전문직’이 됐다.

직업 선택에서 안정성이 이렇게 중요해졌다는 건 직장을 잃는 게 그만큼 끔찍해졌다는 뜻이다. 실직을 뜻하는 영어 ‘between jobs’는 기존 일자리와 새 일자리 사이에 있다는 말인데, 저성장에 일자리가 부족해 그 ‘사이’가 길어졌다. 길어진 사이를 버틸 수 있어야 새 직장을 찾을 텐데, 실업급여 같은 사회안전망은 버틸 힘을 충분히 주지 못한다. 버티다 못한 이들이 저마다 살 길 찾아 가게를 여니 자영업자가 그렇게 많은데, 자영업 폐업률은 80%가 넘어 그런 가게 다섯 중 넷은 망한다.

장하준 교수는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복지국가 노동자는 용감하다”고 했다. 기존 임금의 최고 80% 실업급여와 정부가 보조하는 직업훈련을 받으며 일자리와 일자리 사이를 버틸 수 있기에 ‘실직=세상의 종말’이 아니어서 구조조정 같은 변화를 더 능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한국은 용감한 노동자가 필요한 상황을 맞았다. 조선·해운 외에도 숱한 구조조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버틸 힘을 줘야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