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은 1000만명이 사는 대도시에 높은 산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실제로 도심 빌딩숲을 벗어나면 어디서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등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장충체육관∼남산 구간을 끝으로 한양도성을 따라 조성된 서울 성곽길(18.6㎞)을 완주했다. 몇 달간 성곽길을 두루 걸으며 역사도시 서울의 매력에 푹 빠졌다. 특히 태조 때 만들어진 성벽이 600여년간 근대화 과정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 많은 풍상을 겪었으나 지금까지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대견했다.
서울 성곽길은 내사산과 4대문(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터) 그리고 4소문(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터)을 연결한 옛 한양도성의 역사를 배우고,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탐방로다.
성곽길은 도심에서 가까워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편하게 걸어볼 수 있다. 특히 내사산에 걸린 성곽길에 오르면 서울 도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혼잡한 도심과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시는 2017년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등재신청서가 형식요건의 완전성을 충족했다는 확인을 받았다. 따라서 앞으로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서면 심사와 현지 실사 절차를 거쳐 2017년 6월 말∼7월 초에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요인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민관 협력(Private Public Partnership)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꼽힌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지침’도 ‘파트너 참여’를 유산의 효과적인 관리체계의 중요 요소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울시가 지난 15일 시 교육청, 수도방위사령부, 가톨릭대학교 등 3개 기관과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한양도성의 보존·관리에 적극 협력키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한양도성과 더욱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매년 10월 한양도성 문화제를 개최한다. 올해는 10월 14일부터 사흘간 개최되는데 ‘하루에 걷는 순성놀이’ ‘성곽마을잔치’를 비롯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실사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시민들이 한양도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보존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년에 세계유산 목록에 한양도성의 이름이 당당히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될 때 역사문화도시로서 서울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진다.
기자는 지금 스페인의 북서쪽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역사도시 ‘루고(Lugo)’에 와 있다. 2006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루고에서 한양도성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지 취재하기 위해서다. 루고에는 3세기에 지어진 로마 성벽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 길이만 2.25㎞, 높이는 15m에 달한다. 방문 첫날 로마 성벽을 찾았을 때 시민들이 저녁까지 산책하고 조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성벽은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 속에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도 평소엔 느끼지 못했더라도 항상 곁에 있는 서울 성곽길을 걷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완연한 봄날씨에 물씬 풍기는 봄내음과 함께 수백 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
[세상만사-김재중] 한양도성과 세계유산
입력 2016-04-28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