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귀가

입력 2016-04-28 19:44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우연히 들렀다가 우리 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0년대 초반에 지어진 이층 양옥이었다. 쓸데없이 베란다가 넓고 슬래브 지붕이라고 불리는 평평하고 네모반듯한 옥상이 있는 집. 지금은 마당도 없는 4층 연립주택으로 바뀌었다.

옛집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와 앵두나무, 박하나무가 있었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이면, 바람이 불 때마다 감나무에서 감꽃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당에 감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다. 자랑삼아 높은 가지에서 뛰어내리곤 했다.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부분에 걸터앉아 책을 읽으려 애쓰기도 했다. 물론 책을 읽기에 적당한 자리는 아니었다.

이따금 옛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곤 한다.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인데도 집은 너무 낡고 허물어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벽에는 가망 없는 균열들이 기어오르고, 기둥의 페인트칠은 까칠하게 곤두서 있다. 경첩이 떨어져 흔들리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빗물로 얼룩진 벽지에 손바닥을 대어본다. 차갑다. 집을 지탱하고 있던 생기가 사라졌다. 이럴 수가 있나. 집이라는 건, 언제나 굳건하게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린아이인 나는 어른의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집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공간, 세상을 향해 무장해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다. 자아의 거주지인 신체를 상징하기도 하고. 아직 어렸던 내가 살던 집이 낡고 허물어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꿈은 어쩌면, 이제는 쇠락한 몸과 아직 어린 마음이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일깨워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이 사라졌다.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와 앵두나무 그리고 박하나무도. 감나무 위에 올라가 책을 읽어보겠다고 앉아 있던 어린아이도 사라졌다. 바람이 불면 쏟아지던 감꽃들의 기억도, 언젠가는.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