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에세이로 읽는 하루키… ‘하루키의 세계성’에 답하다

입력 2016-04-28 19:41 수정 2016-04-28 21:15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난해 세계의 독자들과 문답을 나누기 위해 한시적으로 개통했던 웹사이트 ‘무라카미씨의 거처’ 이미지.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으려면 에세이, 기행문, 의미론 같은 비학문적 텍스트까지 다 포함해 총체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스스로 소설의 창작 방법을 독자 앞에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가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하루키의 열혈 팬이자 하루키 문학에 대한 탁월한 해설가로 통하는 우치다 타츠루(고베여학원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것이 쓰여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하나같이 소설 작품과 그것에 대한 ‘해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는 독자들도 있다. 그만큼 하루키의 에세이는 시시하지 않다. 하루키 에세이의 맛을 느끼게 해줄 신간 두 권이 도착했다.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현대문학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하루키(67)가 작심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라지만 소설쓰기의 ABC를 말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소설가가 됐고 어떻게 성공했으며 그의 삶에서 소설은 무엇인지에 중점을 두는데, 그 태도가 사뭇 쿨하다. 말 그대로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다.

언뜻 무심해보이고 겸손해 보이는 글이지만, 심연에는 견고한 자부심이 웅크리고 있다. ‘등단은 쉬워도 살아남는 것은 냉엄하다’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소설가로서 적합하지 않다’ 등 그가 내린 소설가의 정의는 그의 삶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설가로서의 하루키에게 놀라는 것은 두 가지다.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단다. 그리고 고치고 또 고친다. 초고를 여러 번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원고를 넘긴 후 출판사가 보내온 교정지를 새까맣게 해서 돌려주고, 재차 보내준 교정지를 다시 새까맣게 하는 일을 반복한다. 음악을 듣듯 쉽게 읽히는 하루키 소설은 그런 끈질긴 망치질 끝에 탄생했다.

첫 장편 ‘양을 둘러싼 모험’을 낼 때는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던 레코드 가게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처분했다. 오로지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게 위해 퇴로를 차단하는 결단. 그의 성공 이면에는 고비마다 비장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짐짓 남의 얘기하듯 가볍게 얘기하는 태도에 묘한 매력이 있다.

책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과 오해를 해명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그의 소설이 본격 문학이 아니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아쿠타가와상이 그를 비켜갔고, 노벨문학상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는 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을 각광받게 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지는 못한다며 무슨 상을 받은 하루키가 아니라 그냥 하루키로 기억되면 그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가 세계적 소설가로 성장하게 된 데는 스스로의 마케팅도 있었다. 그의 작품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0년대가 끝나가던 무렵이다. 잡지 뉴요커에 그의 단편이 게재되는 행운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미국인 작가와 똑같은 링에서 뛰기로 결심하고 직접 번역자를 찾아 개인적으로 번역을 의뢰하고, 그 번역본을 들고 에이전트를 찾아가 유수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에 이른다.

광팬이 쓴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우치다 타츠루/바다출판사

“현대 일본의 작가 가운데 세계의 언론매체가 문학관 표명에 주목하는 작가, 또 세계의 독자가 신작 간행을 기다리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 안팎의 비평가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이 지독한 문단적인 고립 속에서도 세계적인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 하루키는 일본 작가로는 예외적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까? 하루키에 대한 일본 문단의 외면과 저평가는 타당한가? 일본의 문학평론가로 30여년간 팬이자 숭배자라는 위치에서 하루키를 논해왔다는 우치다 타츠루가 나섰다. 지난 10년간 주로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묶어낸 이 책은 하루키 문학에 대한 저평가를 반박하고 하루키 문학의 세계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저자는 하루키의 창작활동이 1960년대 말 일본의 학생운동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떨쳐내기 위한 실천이었다고 말한다. 또 하루키가 ‘일본 근대문학이 일찍이 그려낸 적이 없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면서 ‘노동철학’과 ‘아버지의 부정’을 세계성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한다.

그는 “하루키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깊이가 있다”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을 치우는 것 같은 사소하고 이름 없는 헌신이 다 모여서 세계가 간신히 성립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또 “아버지가 없는 세계, 누구도 내 존재의 근거를 마련해주지 않고, 아무도 신원보증인이 되어주지 않는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천착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손영옥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