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재판 로비 스캔들’은 2심에서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최모(46·여) 변호사 측이 주요 발원지다. 최 변호사 측은 “지난 12일 정 대표에게 ‘구치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후 정 대표의 재판 청탁 의혹 등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직 법관 4∼5명의 실명이 등장하고, 법조 브로커의 개입 정황도 나왔다.
최 변호사 측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일부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의혹은 뚜렷한 근거가 없어 ‘이전투구’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대법원은 공식적으로 ‘진상조사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경위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 식사, 재판부 청탁… 드러난 사실은
정 대표 관련 의혹 중 최근 논란이 된 부분은 항소심 재판장과 정 대표 지인 간의 ‘저녁 식사’다. 정 대표의 지인으로 알려진 건설업자 이모씨는 항소심 재판장인 L부장판사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일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정 대표의 항소심 사건이 배당된 당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씨는 정 대표 사건을 거론했다.
다음 날 L부장판사는 정 대표 사건에 대해 ‘회피 신청’을 했다. 불공정한 청탁이 우려되므로 재판을 맡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후 언론을 통해 이런 정황이 보도되자 L부장판사는 “이씨가 정 대표의 지인인 줄 몰랐다”며 “불공정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바로 회피 신청을 했다”고 해명했다.
재판부가 바뀐 뒤에도 정 대표는 여러 차례 재판부를 상대로 접촉을 시도했다.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 후 열린 첫 공판에서 재판장은 “부정한 행위를 하지 말라”며 법정에서 공개 경고를 하기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27일 “로비스트들은 모임이나 친구의 친구 등을 통해 판사와 친분을 쌓는다”며 “이후 갑자기 사건 관련 얘기를 꺼내며 청탁을 해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도 ‘(재판부에) 돈을 전달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며 “허황된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사건 로비, 거액 수임료… 아직 남은 의혹은
정 대표의 ‘로비 시도’는 아직 많은 부분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최 변호사 측은 언론을 통해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의 명단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2심 구형량을 1심보다 6개월 줄인 2년6개월로 정했다. 구속 기소했던 피고인의 보석 신청에 대해선 “사안에 부합하도록 적의처리함이 상당합니다”라는 의견을 냈다. ‘적의처리’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법조계 일각에선 정 대표의 로비 시도가 법원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측은 “보석 결정은 전적으로 재판부 권한”이라며 “정씨가 사회복지재단에 2억원을 기탁한 점, 함께 기소된 다른 기업가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점 등을 고려해 구형량을 정했다. 외부 요인이 영향을 미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현재 정 대표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최 변호사 측이 제기한 ‘현직 법관’의 재판부 접촉 의혹은 당사자들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성형외과 의사 등을 통해 정 대표 사건 관련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K부장판사는 “사건 관련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재판부에 연락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재판부에 ‘사건 문의’를 했다는 구설에 휘말린 현직 판사는 법원을 통해 “이런 말이 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재판부와 알지도 못하고 사건에 관여한 일도 없다”고 밝혔다.
대립이 가장 첨예한 부분은 정 대표와 최 변호사 간 ‘수임료 50억원’의 정체다. 최 변호사 측은 “20억원은 정 대표의 민·형사 사건 16건을 변호사 30여명과 함께 수임한 금액”이라며 “30억원은 성공보수였고, 정 대표가 도로 가져갔다”고 주장한다. 정 대표 측은 “최 변호사가 보석 석방을 조건으로 50억원을 요구했다. 상습 도박 사건과 구치소 탄원서 작성 외에 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 측은 “법조 브로커 등이 정 대표에게 돈을 챙긴 후 ‘애썼는데 잘 안 됐다’는 식으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지어내 얘기한 듯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믿고 싶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며 “오랜 시간 힘겹게 쌓아온 사법 신뢰가 한순간에 위협받게 됐다”고 우려했다.
양민철 이경원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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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27 17:57 수정 2016-04-27 2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