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중개의 큰손’ 정의승(77)씨가 1300억원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감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김영삼정부 초기 ‘율곡사업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이후 23년 만에 다시 법정 피고인석에 서게 됐다. 그의 군 수뇌부 상대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는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 특가법상 조세 포탈 혐의 등으로 정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정씨는 2001년 3월∼2012년 8월 독일 방산업체로부터 지급받은 잠수함·군용 디젤엔진 중개수수료를 해외 유령회사 명의로 된 차명계좌로 보내 1319억원을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세금 33억원을 포탈한 혐의도 있다.
정씨는 독일 잠수함 제조업체 하데베(HDW)와 군용 디젤엔진 제조사 엠테우(MTU)의 제품 수입을 중개하면서 이면계약을 체결해 사업당 수백억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209급 잠수함 9척을 도입하는 장보고Ⅰ 사업, 214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장보고Ⅱ 1차 사업, 자주포·전차·해군함정에 탑재되는 디젤엔진 수입 사업 등을 그가 중개했다. 2008년 국세청 세무조사 때 일부 은닉한 해외자금의 꼬리가 밟히자 조세회피처인 리히텐슈타인,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유령회사가 개설한 스위스·홍콩·싱가포르 소재 은행 계좌로 다시 이전한 사실도 드러났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정씨는 1977년 중령 예편 후 무기중개업에 뛰어든 1세대 중개상이다. “국내에 도입된 잠수함은 모두 정의승 손을 거쳤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잠수함 분야 거물 인사다. 율곡사업 당시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3억원의 뇌물을 줬다가 93년 구속 기소된 전력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이번과 비슷한 혐의로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후 10개월간 해외 사법공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씨를 비공개로 불러 추가 조사를 벌였다. 정씨의 군 고위층 로비 의혹 수사는 안모(65) 전 해군 작전사령관 1명을 구속 기소하고 종결됐다.
예비역 중장인 안씨는 정씨에게 뇌물 1억7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23년 만에… ‘무기중개 큰손’ 정의승씨 다시 심판대에
입력 2016-04-27 18:16 수정 2016-04-27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