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출연 압박 거세지는데 길어지는 ‘회장님’들의 침묵

입력 2016-04-27 17:54

거세게 불어닥친 구조조정 태풍 가운데 사재를 출연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회장님’들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채권단, 정부 그리고 노조까지 나서서 회사를 살리려면 대주주가 사재를 털어야 한다고 독촉하지만 당사자들은 묵묵부답이다.

최근 사재 출연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5일 한진해운이 제출한 구조조정 방안을 사실상 반려했다.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이 방안에는 대주주의 사재 출연도 빠져 있었다. 자율협약을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하지만 채권단 내부에서는 조 회장이 사재 출연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 회장을 지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에 대해서도 사재 출연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최 회장은 자율협약 신청 전에 보유 중이던 한진해운 주식을 매각하면서 도덕성 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노조가 압박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25일 기자회견에서 “회사 경영 개선에 정몽준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하는 등 직접 나서라”고 요구했다.

대주주의 사재 출연은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대주주가 기업회생에 대한 강한 의지와 책임감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가깝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주주도 부실 상황에 상응하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사재 출연 등의 방법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주주가 무조건 사재를 출연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27일 “액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사재로 나오는 돈이 기업회생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기업 중에선 대주주에게 직접 책임을 묻기가 애매한 경우도 많다. 한진해운, 현대중공업 등의 경영난은 경영상 실책보다는 업황 악화가 더 큰 요인이다.

다만 과거 사례를 보면 대주주가 사재를 냈을 경우 대체적으로 기업회생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지난 2월 300억원을 출연했다. 채권단은 오너의 진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며 현대상선 지원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10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무려 3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이후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고 그룹 재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사재 출연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2013년에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그 일가가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를 살리기 위해 400억원의 사재를 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2009년 동부하이텍 정상화를 위해 3500억원을 출연한 데 이어 2015년 동부메탈 회생을 위해서도 200억원의 사재를 냈다. 이들 기업은 꾸준히 살아나고 있는 분위기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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