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와 영유아 등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폐질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지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확인된 사망자만 239명에 달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독성물질에 대한 허가관리를 허술하게 한 ‘정부’가 빚어낸 비극이다. 엄마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선 “정부가 허가를 내 준 제품도 믿을 수 없다”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이 밝혀지자 살균 성분이 함유된 모든 제품들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는 폐에 치명적인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회사 옥시레킷벤키저 등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에는 PHMG, PGH이라는 성분이 포함됐다. 이 성분은 폐를 딱딱하게 굳게 해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폐섬유화 현상과 다른 기관에 치명적인 독성을 가졌다. 또한 살균제에 함유된 독성물질 CMIT, MIT도 2016년 1월 폐 이외에 다른 기관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폐나 코 점막을 통해 인체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방향제’ 성분에는 문제가 없을까. 지난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존 밤스 박사 연구팀은 “실내에서 방향제에 오랫동안 노출이 될 경우 호흡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문제가 되는 물질이 바로 ‘파라디클로로벤젠’이다. 이 성분은 공기와 접촉하면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만들어 내며 사람이 자주 접할 경우 폐가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이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집안이나 실내에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향제는 입자가 아주 작고 공기를 통해 퍼지기 때문에 호흡기나 코점막을 통해 인체 유해 물질이 유입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방향제에 함유된 인체 유해 물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표적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와 ‘프탈레이트’ 등이 있다면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탈레이트는 동물이나 사람 몸속에서 호르몬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로 알려져 있다. 방향제에서는 이 성분이 향을 녹이는 용매 역할을 하거나, 향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데 쓰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많은 양이 아주 미세한 입자 단위로 폐에 유입될 경우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프탈레이트 종류에는 DEHP, BBP, DBP, DEP 등이 있다. DBP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사용이 금지된 성분이다. DBP 프탈레이트에 자주 노출되면 여성은 자궁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남성은 호르몬 교란으로 정자수 감소 등의 생식력 저하가 일어날 수 있다.
이밖에도 현재 시중에서 공산품으로 유통되는 제품들의 함유 성분에 대한 정부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천연 향초, 살충제 등 일상 속에서 접하는 제품 중 위험 성분이 함유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방향제나, 향초 등 호흡기를 통해 유입될 수 있는 제품에 성분과 함유량 표시가 법적으로 의무화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절실하다.
장윤형 기자 newsroom@kukinews.com
[장윤형 기자의 이슈체크-도마 오른 방향제] 폐 손상 유발 확실한데 성분·함유량 표시 안돼
입력 2016-05-01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