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누리과정 숙제 이젠 풀어야

입력 2016-04-27 18:58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4·13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미뤄놓은 숙제들이 많다.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었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문제도 그중 하나다. 총선 이후 문제가 풀릴까 기대했지만 상황은 심상치 않다. 정부와 교육청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정부는 지난 22일 대통령 주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 신설이란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보통교부금 재원 중 일부를 여기에 넣어 누리과정 등 예산으로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할 때 시·도지사와 반드시 협의하도록 교부금법 시행령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강제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재원 대책이 빠져 있다는 데 있다. 예산 편성을 의무화하겠다면서 재원은 알아서 마련하라는 식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누리과정 예산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교육청은 반박한다. 교부금법 등의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도록 했지만 재원은 마련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교육청의 입장 차는 중기재정전망이 틀린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누리과정 도입 당시 정부는 중기지방교육재정전망을 하면서 교부금이 2013년 42조원에서 2015년 49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지난해 실제 교부액은 39조원에 그쳤다. 전망에 비해 2015년에만 10조원이 부족하니 교육청들이 ‘돈 가뭄’에 시달리는 건 당연하다.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각 시·도교육청은 긴축재정운용에 들어갔지만 그것으로는 감당이 안돼 빚을 내야 했다. 2014년 3조8000억원, 지난해 6조원의 지방교육채를 발행했다. 정부가 재원을 내놓지 않으면 올해도 3조9000억원의 빚을 추가로 져야 한다.

정부는 현행 교부금으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전제 하에 예산 편성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인 시·도교육청에 대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압박해 왔다. 그러나 교육청 예산도 다 나름의 쓰임이 있기 때문에 누리과정 예산을 다른 곳에서 끌어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땜질 편성’과 카드사 대납이란 ‘외상’, 다른 교육사업 포기 등을 통해 누리과정 무상보육 중단 사태를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은 연간 4조원 정도다. 정부가 이 부담을 교육청에 떠넘기는 건 초·중등교육 예산을 전용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교육청은 항변한다.

교육청들은 “현재의 보통교부금 수준은 정상적인 교육재정을 충당하기에 부족하다”며 내국세의 20.27%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5% 포인트 인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 의무화를 밀어붙일 태세지만 관철하기는 쉽지 않은 여건이다. 4·13총선에서 누리과정 예산 전액 국비 편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야권이 과반 당선됐다. 20대 국회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입법이 불가능한 여소야대가 됐다.

누리과정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여건이 어려워져 무상보육을 잠시 중단해야 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재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교부율 인상이든, 정부 일반회계로 편성하든, 납득할 만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교육청과 지자체의 협조를 구하는 게 순리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