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의 꽃씨 칼럼] 무너진 단을 다시 수축해야

입력 2016-04-27 20:08

기독자유당이 이번 총선에서 한 석도 진출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두세 명이 들어간다 한들 뭘 하겠는가”라며 회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다.

그렇다면 영국의 노예해방법을 윌버포스라는 한 사람이 이뤄냈지, 몇 명이 했는가. 우리나라에서 지난번 이슬람의 수쿠크법을 막았던 것도 한 사람의 의원이었지 않은가. 타종교 군종인을 파송하는 것도 한 명이 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무너졌다.

실패 이유는 무엇보다 홍보 부족이었다. 또 두 당이 하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기독자유당과 기독당을 혼돈한 것이다. 나부터도 교회에서 기독자유당이라는 말과 기독당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썼다. 교인들도 혼돈해 표가 나뉜 것이다. 실제로 나뉜 표를 합치면 두 석까지는 충분했고 세 석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두 당을 하나로 만들지 못한 게 이런 참담함을 가져다줄 것이라 누가 알았겠는가. 여당도 서로 다투고 분란을 일으키다가 참패한 것처럼 기독자유당도 안일한 상황 인식과 자만 때문에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총선 이후 여러 모임에서 많은 말을 들었다. “오히려 한 석도 못 들어간 것이 잘 됐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반대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다. 이제 기독자유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애당초 관심을 안 갖고 초연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화가 났다. 그래서 이렇게 맞받아쳤다.

“우리는 함부로 하나님의 뜻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부족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광을 돌리지 못해 놓고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협력하지 않은 사람은 비판도 자제해야 합니다. 오히려 수고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윌버포스가 앉아서 노예해방법 제정에 성공했겠는가. 온갖 오해와 비난의 화살을 받으면서 적어도 2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이룬 것이다. 마틴 루터 킹도 평생 인권운동을 했다. 그러다 나중엔 저격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번 실패를 통해 한국교회 보호라는 대의 아래 정치적 욕망이 숨어 있지 않았나 자성해 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독자유당 자체가 한국교회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목표는 동성애나 이슬람 등 차별금지법의 독소조항을 빼는 일이다. 우리가 언제 동성애자들을 혐오한 적이 있던가. 우리는 그들의 처벌을 요구한 적이 없다. 다만 성경이 말씀한대로 동성애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죄라고 지적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역차별을 당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일 뿐이다. 또 우리는 이슬람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다. 다만 테러를 경계하고 무서워할 뿐이다. 우리가 이슬람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도 이슬람권에 가서 자유롭게 선교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그들을 받아들이라고 하면서 이슬람권에서 선교를 못하게 한단 말인가.

여야 의원들이 이에 대한 입법화를 막아준다면 한국교회에 기독자유당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독정당을 내는 것이 한국교회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국회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 여야 의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여야가 그것을 못 막아주고 한국교회가 계속 도전 받고 위기를 당한다면 기독자유당은 다음에 또 도전해야 할 것이다. 그때는 당을 하나로 통합해 반드시 몇 석이라도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쨌든 이번 결과를 통해 한국교회에 연합의 정신이 무너져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정말 부끄러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너진 연합 정신의 단을 다시 세우고 수축해야 한다. 마치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서 통절한 마음으로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던 것처럼, 다시 무너진 연합의 단을 복구해야 한다. 눈물이 도랑이 될 정도로 가슴을 치며 제단을 수축했던 엘리야의 마음으로.

소강석 (새에덴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