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끼-김강현] 1년치 신문 구독료를 미리 내는 이유

입력 2016-04-27 20:17 수정 2016-04-27 21:26
김강현 생터성경사역원 본부장
생활고 때문에 신문을 돌리며 학교를 다니던 중학생 시절이었다. 자랄 때는 다 그런 걸까. 아무리 많이 자도 잠은 늘 부족했다.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란 매번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본드처럼 강력한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마주하는 현실은 새벽공기의 차가움보다 훨씬 냉혹했다.

무엇보다 집집마다 ‘신문사절’이라고 붙여둔 곳이 많았다. 어떤 경우에도 신문 넣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지부 총무의 공권력(?) 때문에 나는 늘 곤혹스러웠다. 강제 신문 투입을 하다가 한 겨울 새벽에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일부러 풀어놓은 개에게 쫓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집주인이 대문 뒤에 숨어있다 갑자기 튀어나와 욕을 하기도 하고 멱살을 잡고 흔들며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수금하는 것이다. 신문을 돌리는 사람이 수금도 함께 책임져야했는데 그 기간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고난주간’이었다.

특히 ‘신문사절’ 푯말을 대문에 붙인 집에 찾아가는 일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만큼 큰 공포였다. 수금은 정말 쉽지 않다. 줄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일단은 없다고 고함부터 질러댔다. 그래서일까. 나는 구독중인 국민일보 대금 1년분을 선납하고 있다.

수금 마감기한이 끝나가는 어느 추운 겨울. 유독 실적이 없어 힘이 나질 않았다. 바람은 차고 해는 기우는데 배가 잔뜩 고팠다. 마지막 집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네∼누구세요.” 아주머니의 밝은 음성이 꼭 아들을 맞이하는 엄마 같았다.“안녕하세요. 신문대금 수금하러 왔어요.” 문이 열리더니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가 환한 얼굴로 맞아 주었다. “추운데 너무 고생이 많구나. 잠깐 집에 들어와서 따뜻한 우유 한 잔 하고 가거라.”

나는 따뜻함에 이끌려 들어갔다.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받아든 내게 밥 때가 되었으니 밥을 먹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방석을 내어주셨다. 배는 고팠지만 선뜻 앉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손사래를 칠 수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음악을 틀어주고 볼 만한 책을 한 권 가져다주셨다. 잠시 후 밥과 국, 찌개 그리고 장조림까지 한 상을 들고 나타나셨다. 같이 있으면 불편할 테니 편하게 먹으라며 자리를 비켜주셨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과일을 들고 앉으셨다.

나는 이내 여러 질문이 쏟아질 것을 예상했다. 어디에 사는지, 몇 학년인지, 어떻게 신문을 돌리게 되었는지…그런 질문.

하지만,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자기의 중학생 시절 얘기를 들려주셨다. 가난해서 불편하게 자랐지만 한 번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못해봤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때처럼 살고 싶다고 하셨다. 넋을 놓고 얘기를 듣자니 신문 대금 위에 봉투 하나를 얹어주셨다. 책 몇 권 사보라 하셨다.

“예전 내 중학생 시절을 향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렴. 사실 나한테 주는 거야. 대신 받아줘.”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밖을 나오며 다시 대문을 쳐다봤다.

그때 철대문 한쪽에 붙어있는 작은 쇠붙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교회 이름이 적힌 교패였다. 거기 투박하게 그려진 십자가에서 따뜻한 사랑이 느껴졌다. 어느덧 50을 향한다. 세상은 네온 십자가로 넘쳐나지만 나는 늘 그 낡은 십자가가 그립다. 밤이 너무 밝다.

약력=△생터성경사역원 본부장/목사△광신대학교 겸임교수△선교사의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