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유신 사무관’의 퇴장

입력 2016-04-27 19:00

유신(維新)은 좋은 의미의 단어다.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함’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쇄신(刷新) 혁신(革新) 정신(鼎新) 등이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신이 본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 적이 있다.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개정안을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10월 유신을 감행한 것이다. 개헌안은 그해 11월 국민투표를 거쳐 12월 공포됐다. 유신헌법(維新憲法)은 이렇게 탄생했다.

군사정권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 지향, 자유경제 질서 확립 등을 위해 유신헌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박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이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고, 군사정권의 독재를 가능하게 한 헌법이었다. 유신정권은 79년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막을 내렸다.

군사정권은 77년 ‘사관 특채 사무관 1기’ 106명을 선발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뒤 대위까지 복무하면 사무관이 될 수 있었다. 당시 행정고시로 134명을 뽑았으니 특채 규모는 생각보다 많았다. 사무관으로 특채한다는 모집요강을 보고 사관학교에 들어간 가난한 고교생들도 있었다.

당사자들은 특혜가 아니라고 했지만 기존 공무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9급에서 5급이 되기까지 20∼30년이 걸리고, 6급으로 퇴직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사관 특채 사무관을 ‘유신 사무관’ ‘군화 신은 공무원’으로 불렀다. 승진을 학수고대하던 6급 공무원들은 유신 사무관을 낙하산으로 보기도 했다. 88년 11기까지 784명이 군복을 벗고 사무관이 되었다. 사관 특채 사무관들은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이 좋았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유신정권의 산물인 사관 특채 출신 공무원 20여명이 내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한다. 유신정권이 붕괴된 지 38년 만에 유신 사무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염성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