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탄광서 예술을 캐다… 강원랜드 ‘도시재생포럼’ 성과와 과제

입력 2016-04-27 18:39 수정 2016-04-27 21:52
도시재생사업으로 재탄생한 강원도 정선군 ‘삼탄아트마인’ 내부 갤러리. 과거 광부들의 샤워장이 문화공간으로 재생됐으며,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폐광에서 변신한 옛 동원탄좌. 강원랜드 제공
달콤한 로맨스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주로 촬영한 곳 중의 하나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삼탄아트마인’이다. ‘삼척 탄좌’를 줄인 ‘삼탄’과 예술(art), 탄광(mine)을 합성해 ‘예술을 캐는 곳’이라는 의미다. 1964년부터 2001년까지 38년간 운영된 뒤 폐광된 삼척 탄좌 정암 광업소를 재생해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한 곳이다. 한국관광공사 선정 ‘2015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곳,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함백산로를 따라 강원랜드를 지나면 오른편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거대한 철탑이 눈에 들어온다. 옛 시설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어 언뜻 보면 문화 예술 공간이라기보다 공장처럼 느껴진다. 탄광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이곳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예술과 만나 신비한 공간으로 재생됐다. 레일과 각종 장비, 석탄가루, 깨진 유리창 등 과거의 탄광의 흔적에 박물관, 갤러리, 체험관, 카페, 레스토랑, 레지던스의 공간을 더해 산업의 흔적과 예술의 아름다움이 섞인 광경을 만들어내면서 관광 명소가 됐다.

여기에 드라마도 한몫했다. 극중 우르크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는 실내장면은 1층 권양기 타워와 조차장시설로 접근하는 브리지 갤러리에서 촬영됐고, 유시진(송중기 분)이 지진으로 피해를 본 강모연(송혜교 분)을 찾아가 만난 곳은 제2 권양기 타워 시설공간이다. 강모연이 납치돼 인질로 잡혀있던 곳은 2층 샤워장 시설이다.

해외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로 일본 시가현 나가하마 지역이 꼽힌다. 이 지역은 400여년 전 에도시대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지난 수백년동안 비단산업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하지만 1970년대 고도성장으로 비단산업이 위축되면서 주변 마을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위기를 느낀 지역 주민들은 힘을 모아 새로운 문화 산업인 유리공예를 시작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젊은이들을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유학도 보냈다. 이 같은 주민들의 열정과 관심으로 예전의 구로카베 은행은 현재 유리공예를 전시·판매하는 박물관으로 거듭나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유명관광지가 됐다.

캐나다 밴쿠버의 대표적 관광지인 그랜빌아일랜드의 복합문화산업공간, 홍콩의 서구룡 문화예술지구 사업, 영국 셰필드시의 문화산업도시로의 전환, 독일 뒤스부르크 노드공원 등도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꼽힌다.

강원랜드가 위치한 폐광지역은 한때 석탄 산업으로 황금기를 보냈지만 정부의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광부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면서 퇴보하기 시작했다. 강원랜드는 설립 이후 지역주민 고용창출을 비롯한 사회공헌사업, 폐광지역개발기금 및 지방세 납부 등으로 10조원이 넘는 비용을 지역에 투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도시재생을 통해 ‘폐광지역 지속발전을 위한 미래비전’을 찾는 ‘좋은 마을 만들기’ 포럼이 27일 강원랜드 컨벤션호텔에서 열렸다. 기업인 강원랜드가 도시재생 주체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와 주민들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다. 도시재생에 성공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에 비춰볼 때 진정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자체가 행정 지원을 하는 등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포럼에는 지역주민, 도시재생 전문가, 정선군 관계자, 강원랜드 임직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해 폐광지역을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한 주제발표와 성공사례 발표, 종합토론 등을 이어갔다.

먼저 ‘왜 도시재생인가?’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이용규 전문위원(산업문화연구소 소장)은 폐광지역의 현재 모습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폐광지역에 도시재생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어 ‘누가 나서야 하는가?’에서는 구자훈 전문위원(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이 도시재생과 주민참여의 관계, 지역 특성을 고려한 문화적 접근, 주민들의 지속적인 경제활동과의 연계 등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특히 ‘어떻게 좋은 마을을 만들까’라는 주제로 일본 도쿄 카구라자카 지역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도쿄 비영리단체(NPO) 대표 카오루 야마시타를 특별위원으로 초청해 커뮤니티 보드의 필요성과 지역주민들이 주도하는 도시재생 성공사례를 들었다. 주제발표가 끝난 후에는 황희연 전문위원이 이끄는 패널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기조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폐광지역의 경제 살리기 패턴은 강원랜드가 번 돈을 지역의 요구에 따라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는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며, 도시재생만이 그 살 길”이라고 밝혔다. 함 대표는 이어 “도시재생은 눈에 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식의 재생, 즉 삶에 찌든 2등 국민의식이 아닌 1등 국민의식으로 거듭나는 재생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