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청탁… 거액 성공보수… 드러난 법조계 민낯

입력 2016-04-27 04:59
정운호(51·수감 중·사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여성 변호사 폭행 사건이 ‘수임료 20억원’ 논란을 넘어 법원에 대한 사건 청탁과 성공보수 편법수수 의혹 등으로 번지고 있다. 애초 항소심을 맡은 재판부는 “불공정한 청탁이 우려된다”며 스스로 재배당을 요청했으며, 사건을 넘겨받은 재판부 역시 법정에서 ‘뒷문 변론’에 대해 공개 경고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정 대표와 여변호사 측은 서로를 향해 ‘재판부 보석 청탁’ ‘전관 동원 구명로비’ 등의 법조 비리를 주장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기형화된 변호사 시장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법정 밖 변론하지 마라” 재판부 일갈

지난 2월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부장판사 장일혁) 심리로 열린 정 대표의 항소심 2회 공판. 재판장인 장 부장판사는 피고인석을 향해 “‘소정 외 변론’을 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소정 외 변론은 법정 밖에서 이뤄지는 ‘전화 변론’ 등의 편법 변론을 의미한다. 재판부가 법정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공개 경고를 할 만큼 청탁 시도가 많았다는 의미다.

애초 정 대표 사건은 형사항소4부에 배당됐다. 그런데 재판부가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며 배당 바로 다음날 법원에 사건 회피를 신청했다. 법원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해당 재판장은 전날 지인인 건설업자와 저녁식사를 함께했는데, 지인이 정 대표 사건 얘기를 꺼냈다. 재판장은 자신이 정 대표 사건을 맡게 된 줄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이 사실을 알고 재배당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후 사건은 형사항소5부로 넘어갔지만 유사한 청탁 시도가 이어진 정황이 많다. 이 사건에 관계된 한 법관은 “정 대표가 돈이 많으니 주변에 브로커들이 활동한 모양”이라며 “변호사들이 ‘정 대표 사건 의뢰가 들어오고 있는데 맡아도 되겠느냐’며 재판부에 문의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 말 정 대표의 보석 신청을 기각하고, 지난 8일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판결 후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심부터 정 대표를 변론했던 최모(46·여) 변호사는 “12일 서울구치소에서 정 대표를 접견하다 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변호인단 선임비 20억원을 돌려 달라’며 정 대표가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착수금 20억원+성공보수 30억원…진실은?

최 변호사 측은 “지난달 2일 정 대표가 ‘다른 변호인단을 통해 항소심 재판부에 접촉해 집행유예를 약속받았다’며 사임을 요청했다”며 “요청에 따라 사임했는데, 이후 실형이 나오자 정 대표가 ‘수임료를 돌려 달라’며 욕설·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 측은 “정 대표가 ‘성공보수’를 약속하며 대여금고에 30억원을 예치해뒀다”고도 말했다.

정 대표 측은 26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진정서를 내고 “최 변호사가 보석 석방을 명목으로 소송 계약서 작성도 없이, 사회통념상 현저히 부당한 거액의 수임료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 측은 “재판부와 연고 관계를 내세운 건 오히려 최 변호사다. 보석이 기각되자 정 대표가 사임시킨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최 변호사 측은 “수임료 20억원은 정 대표의 민·형사 사건 10여건을 변호사 24명과 함께 사용한 금액”이라며 “나는 정 대표의 ‘금전출납부’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대표가 전관 변호사와 현직 법관 등을 통해 재판부에 청탁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연이어 제기하고 있다. 서울변회는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범털’ 피고인과 ‘찍새’ 변호사

이번 사건으로 ‘사건 청탁’과 ‘고액의 성공 보수’ ‘전관 변호사’ 등 법조계의 은밀한 수임 생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자백했고 법리 공방이 치열하지 않았다”며 “석방이냐, 실형이냐가 관건인 상황에서 이른바 ‘범털(돈·권력 있는) 피고인’의 로비 노력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정 대표는 1심 선고, 항소장 제출, 보석 기각 등 재판 진행 단계마다 변호인단을 여러 차례 물갈이 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변호사 1명이 수임료를 일괄적으로 받아 조율·섭외를 도맡는 ‘코디네이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과거 법조 브로커가 소위 ‘찍새’ 역할로 사건을 수임해 여기저기 나눠주던 일이 변호사 업계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행위는 현행법상 문제는 없다. 하지만 피고인의 의뢰로 ‘뭉칫돈’을 배분하는 것이 브로커들의 행태와 같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무효를 선언한 성공보수도 여전히 존재했다. 성공보수를 대여금고에 넣어둔 뒤 목표를 달성하면 변호인이 가져가고, 실패하면 의뢰인이 찾아가는 편법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회계 처리 과정에서 일종의 ‘꼼수’를 통해 성공보수를 예전처럼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실형이 나왔고, 보석 신청도 기각되는 등 사건 청탁 시도가 전부 허사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고위 법관은 “‘재판부에 잘 말해놓겠다’고 약속한 뒤 말은 안 하고 돈만 챙긴 경우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