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업 경쟁에… 취업준비 시달리고… 직장일에 치이고… N포 세대? 모두 다 힘든 ‘N포 시대’

입력 2016-04-26 17:47

경제·사회적 수준이 전체의 중간쯤 되는 집단을 중산층이라 부른다. 소득만 따지는 통계청 방식으로 보면 우리나라 인구 대비 65.4%는 중산층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중간’도 못 된다고 여긴다.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은 스스로를 ‘중간 이하’로 봤다.

이런 ‘자조(自嘲)’는 왜 생겨나는 걸까. 그 밑바탕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N포 시대’가 자리잡고 있다. ‘N포’는 극심한 취업난 앞에서 청년들이 ‘3포’(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를 넘어 수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뜻의 신조어다.

‘N포’는 세대를 넘어 시대 흐름이 되고 있다. ‘학원 뺑뺑이’에 놀이와 엄마를 빼앗긴 어린이, 학업 경쟁에 시달리느라 친구를 잃은 청소년, 일에 치여 가족과 저녁을 잊은 지 오래인 장년층, 복지 사각지대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한 노인들. 전문가들은 모두 다 힘든 시대, 모두 다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사회에서 원인을 찾는다.

다들 포기하고 삽니다

“학원비에 등골이 휘는데, 정작 아들 얼굴을 볼 시간이 없네요.” 직장인 이모(47)씨는 중학생 아들과 며칠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들은 잠자리에 들고 난 뒤다. 1주일에 한두 번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학원에 가고 없다.

서울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 대기업 부장이라는 직함 등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그는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했다. 이씨는 “매일 일에 치여 소시민으로 살면 그게 바로 서민”이라면서 “가족, 저녁이 있는 삶은 남의 일”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인 이씨의 아들(14)은 수업을 마치면 대치동 학원가로 향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주말은 없었다. 특목고 대비반에 묶여 학원과 학원을 맴돈다. 친구라고 해봐야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전부다. “외고에 꼭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들이 모두 외고 진학을 원하는데 혼자만 일반고에 남고 싶지 않아요.”

은행원 신모(34·여)씨는 출산휴가를 끝내고 두 살배기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겼다. 주말에만 집으로 데리고 온다. 양육비에 훗날 들어갈 교육비를 생각하면 맞벌이 말곤 답이 없다.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가 재취업에 실패한 ‘경력단절’ 사례는 숱하게 봤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신씨의 친정어머니 장모(66)씨는 손녀 육아로 쉴 틈이 없다. 자식 뒷바라지로 평생을 보냈는데 늙어서까지 손녀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장씨는 “딸이 용돈이라며 건네는 수고비 말고는 딱히 수입이 없다”고 했다.

서울시민 76.4% “나는 보통도 못돼”

서울연구원이 지난 8일 발간한 ‘한눈에 보는 서울’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민 76.4%는 자신의 경제·사회적 위치를 ‘중하(中下) 이하’라고 답했다. 6단계로 나눴을 때 상상(上上)은 0.2%, 상하(上下)는 2.4%, 중상(中上)은 21.0%에 불과했다. 반면 평균보다 낮은 중하(中下·51.6%), 하상(下上·21.2%), 하하(下下·3.6%)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설문만 보면 서울시민의 76.4%는 중산층이 아니다. 반면 통계청의 중위소득(2014년 기준 187만8000원) 기준 중산층은 우리 인구의 65.4%다. 적어도 서울시민의 3분의 2가량은 중산층인 셈이다. 그런데도 ‘보통도 못 된다’는 자조가 흔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비관’이 자조를 부른다고 본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80년대에는 80% 정도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겼는데 요즘은 20%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보다 가난할 세대라는 전망도 나오는 등 미래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이라 자조가 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희망을 품기 힘든 닫힌 사회 탓이라는 진단도 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실제로 가난했더라도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기곤 했는데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닫힌 사회’에서 더 이상 희망을 품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업 이후에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지금까지 누려온 것을 향후에는 누리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신훈 이가현 허경구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