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해운·조선 ‘고강도 자구’ 요구하는데… 자구 노력 없으면 생존도 없다

입력 2016-04-26 21:54 수정 2016-04-27 08:43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관련 5개 계열사 대표들이 26일 담화문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휴일 및 연장근무를 없애는 등 고통 분담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선박들이 건조되고 있는 모습. 현대중공업 제공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인력을 더 줄이고 급여체계를 개편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추가 자구 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도 주채권은행을 통해 경영개선 계획을 요구하는 등 조선업계에 고강도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해운업계를 향해서는 현대상선에 다음달 중순까지 용선료(화물선 임대료)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한진해운에도 같은 수준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휴일·연장근로 폐지를 골자로 한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인력감축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서울 세종대로 금융위원회에서 범정부 구조조정협의체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임 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산업은행 소유인 대우조선은 추가 자구 계획을 수립하고,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에는 주채권은행이 경영 개선을 위한 최대한의 자체 계획을 받고 계획 이행 여부를 점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 우려에 대해서는 “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적극 검토하고, 개별 기업 노사의 적극적인 자구 노력을 지원하면서 고용구조 개선, 원·하도급 격차 해소 등 해당 업계 전반의 노력을 유도하겠다”고 임 위원장은 밝혔다. 그는 “한국경제의 명운이 달린 구조조정을 사즉생(死則生), 죽을 각오를 작정해야 산다는 정신에 입각해 정부와 채권단이 구조조정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조선업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은 시작도 하기 전에 선주, 대주주 일가, 노동계 등 이해당사자들의 ‘나부터 살아남기’에 막혀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의 경우 해외의 화물선주들과 벌이고 있는 용선료 협상이 타결돼야 회생을 위한 채권단의 지원이 시작될 수 있다. 22개국에 산재해 있는 선주들은 수십척의 화물선으로 세계 해운업계를 주물러 온 거물들이다. 임 위원장은 “선주들도 고통을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용선료 협상이 안 되면 채권단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사실상 법정관리뿐”이라고 말했다. 협상 시한도 다음달 중순으로 못 박았다.

임 위원장은 부실기업의 대주주와 일가 등을 향해서도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도 기업의 대주주나 여러 이해관계인이 법규를 위반하는 도덕적 해이 사안이 있다면 반드시, 철저히 추적해 상응하는 책임을 추궁할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백기를 들기 이틀 전인 지난 20일, 전 경영진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가족이 증시에서 한진해운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고 공시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25일 울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업의 부실은 무리한 과잉투자를 부추긴 정부와 재벌기업에 책임이 있다”며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진행하는 방식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 회사 경영진은 조선업 불황에 따른 인력감축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노조의 반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정치권의 구조조정 논의도 방향이 문제다. 임 위원장은 “여야와 정부가 함께 구조조정 대책을 논의할 협의체를 만들자는 정치권 제안을 환영한다”며 대규모 실업에 대비한 실업급여 개편(고용보험법), 근로시간 단축(근로기준법), 파견확대(파견법) 등 노동4법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당부했지만 “개별 기업 구조조정 문제에는 관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