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비어간다”면서… 現重, 구조조정 몸사리는 이유는

입력 2016-04-26 17:43 수정 2016-04-26 21:41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관련 5개 계열사 대표들이 26일 담화문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휴일 및 연장근무를 없애는 등 고통 분담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선박들이 건조되고 있는 모습. 현대중공업 제공

조선·해운업계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국내 조선사의 맏형 격인 현대중공업은 유독 몸을 사리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나름 자구안을 수립한 뒤 꾸준히 이행하고 있고, 회사 재무 상태가 인력을 줄일 정도로 심각한 위기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강성 노조’로 인해 구조조정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다 더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 감축 고려 단계 아니다” 1분기 흑자 전환=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관련 5개 계열사 대표들은 26일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전 임직원이 고통 분담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여기에는 휴일과 연장근무를 없애는 등의 비용절감 방안이 담겼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인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을 비롯한 대표들은 “일감이 줄기 시작했고 독이 비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5개사는 휴일·연장근무를 폐지하고 안식월 휴가 및 연월차를 모두 사용하도록 하기로 했다.

다만 업계가 예상했던 인력감축안은 나오지 않았다. 담화문에는 “조직, 인력, 관행 모든 것을 변화된 경영 환경에 맞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해 시행하겠다”는 내용만 포함됐다. 지난주 현대중공업이 인력을 3000명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지만 이 역시 부인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우리는 공식적으로 인력감축 계획을 밝힌 바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긴축경영 체제에 돌입한 현대중공업은 사장단과 임원, 부서장의 급여 반납을 시행하고 있고, 보유 자산 매각을 통해서는 1조6000억원대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런 가운데 근무시간을 줄이는 자구안까지 추가한 것이고, 향후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구조조정의 최종 단계인 인력감축을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악재와 수주절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영난 자체는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다고도 주장한다. 실제 이날 발표한 1분기 실적에서 현대중공업은 10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연결 기준으로 매출 10조2728억원, 영업이익 325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적자는 5조원 규모지만 부채비율은 221%로 업계 내에서는 양호한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부채비율이 무려 4301%다.

◇이 와중에 ‘임금 올려 달라’는 노조=그러나 노사 갈등은 다른 조선사와 비교해 두드러지는 현대중공업만의 불안요소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난해 임금 동결과 무파업을 받아들이는 동의서를 채권단에 제출했다. 반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측과 첨예하게 맞서 있는 상태다.

지난주 3000명 감축설이 나돌자 현대중공업 노조는 즉각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이어 노조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 경영진은 책임지지 않고 노동자들만 퇴출하는 구조조정 방식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휴일·연장근무 폐지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다음 달 4일 울산조선소에서 임단협 투쟁 출정식을 갖고 임금 9만6712원 인상 등을 사측에 요구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노조를 의식해 더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지금처럼 계속 노조에 끌려다닐 경우 체질 개선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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