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다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된 캐나다 남성이 피랍 7개월 만에 살해된 채 발견됐다. 보라카이, 세부 등 세계적인 휴양지가 많은 필리핀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잔혹범죄가 발생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25일(현지시간) CNN방송과 AP통신에 따르면 전날 오후 필리핀 남서부 홀로섬의 한 도로변에 오토바이를 탄 괴한 2명이 무언가가 담긴 비닐봉지를 버리고 달아났다. 비닐봉지 안에는 백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잘린 머리가 들어있었다. 유전자 감식 결과 살해된 남성은 지난해 9월 현지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된 캐나다 국적의 존 리즈델(68)로 밝혀졌다.
리즈델은 지난해 9월 21일 남동부 다바오 인근 사말섬 오션뷰리조트에 정박된 요트에서 캐나다 관광객 로버트 홀, 홀의 필리핀인 여자친구, 노르웨이 국적의 리조트 매니저와 함께 납치됐다.
리즈델을 납치한 단체는 홀로섬 일대를 근거지로 하는 이슬람 무장반군 ‘아부 사야프’다. 1991년부터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폭탄테러와 납치를 일삼은 이 단체는 1998년 정부군에 지도자가 피살되면서 활동이 위축됐다. 그러나 2014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하며 다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부 사야프가 리즈델을 비롯해 인질 1명당 3억 페소(73억5900만원)의 몸값을 25일 오후 3시까지 지불하라고 협박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지난달에도 홀로섬 인근에서 3척의 배에 탄 인도네시아인 14명과 말레이시아인 4명을 납치했다. 지금까지 아부 사야프가 납치한 외국인만 4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은 국민 대다수(83%)가 가톨릭을 믿지만 남부 지역은 분위기가 다르다. 남부에서 가장 큰 섬인 민다나오섬은 인구 4명당 1명이 이슬람교도다. 자연스럽게 이슬람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하다. 아부 사야프, 공산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으로 치안력이 미치지 못하면서 외국인과 주민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도 잦다. 지난 5일에도 민다나오섬 남라나오주에서는 근로자들이 무장괴한에 납치됐다가 9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 15일에도 타위타위주 시탕카이섬 인근에서 무장괴한이 인도네시아 선적 예인선 2척을 공격하고 선원 4명을 납치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민다나오섬의 삼보앙가시(市)와 홀로섬이 포함된 술루제도와 바실란·타위타위주를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했다. 영주, 취재·보도, 공무에 한해 허가를 받고 방문할 수 있다. 허가받지 않고 이 지역을 방문하면 여권법 26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미국 국무부도 지난 21일 필리핀 남부 술루제도에 여행자제령을 내렸다. 영국 정부도 여행경보를 발령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찾는 보라카이나 세부는 여행금지지역은 아니다. 그러나 관광객을 납치한 곳과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다소 떨어진 이번 피살사건을 생각하면 다른 휴양지 역시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보라카이를 포함해 필리핀 전 지역은 현재 외교부 지정 여행자제지역이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IS 추종단체, 필리핀서 캐나다 관광객 참수
입력 2016-04-2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