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저씨, 숨막히는 명품연기에… 안방극장은 호흡곤란

입력 2016-04-27 04:00

중년 남자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이 화제다. 혼을 실은 듯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세밀하게 담아내는 미묘한 표정 변화로 화면을 장악한다. 깊게 팬 주름마저 연기의 깊이를 더해준다. SBS ‘대박’의 최민수(54), KBS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박신양(48), tvN ‘기억’의 이성민(48) 이야기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이 아저씨들이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5년 만에 드라마로 컴백한 박신양은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박신양이 맡은 조들호는 천재적이면서도 괴팍한 인물이다. 기소율 100%의 유능한 검사였다가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며 노숙자로 전락, 이후 변호사로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캐릭터 자체가 극적인 변화를 거듭하는데, 박신양은 그 모든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원작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고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거듭난 조들호의 활약이 너무 뻔한 스토리로 빠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박신양의 연기력이 이 모든 걸 잠재우고 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박신양의 연기가 너무 그럴듯해서 허술한 장면도 ‘그럴 수 있겠다’며 받아들여진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시청률은 12.7%(25일 방송 기준·닐슨코리아 제공)로 월화드라마 1위다.

‘대박’에서는 최민수가 압도적인 연기력을 펼치고 있다. ‘대박’은 동시간대 방송되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보다 시청률에서 밀리지만 최민수가 보여주는 연기만큼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최민수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숙종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표현해내는 숙종은 냉정하고 치밀하게 궁을 장악한 절대군주다. 지금껏 사극에서 보여줬던 온화하거나 우유부단한 숙종과는 사뭇 다른 해석이다. 최민수의 숙종에게선 넘치는 남성미와 강한 카리스마가 방송 내내 뿜어져 나온다. 낮은 목소리,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 냉혹한 말투로 만들어내는 장면 하나하나가 시청자들을 숨죽이게 한다.

‘기억’에서 이성민은 전작인 ‘미생’에서와는 또 다른 생활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였다가 40대에 알츠하이머에 걸리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박태석을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그려낸다.

이성민은 삶을 송두리째 잃게 된 40대 가장의 고뇌, 절망, 분노, 악에 맞서면서 겪게 되는 불안, 생을 향한 사투까지 쉽지 않은 다양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미묘한 표정 변화, 가벼움과 무거움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다보면 어느새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이성민의 연기에 감탄할 새도 없이 어느새 박태석의 감정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최민수, 박신양, 이성민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실력파 배우다. 중년이 된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안방극장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녹슬지 않은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