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 살아 숨쉬는 옹기에 초록 추억

입력 2016-04-27 17:27
울산 울주군의 ‘영남 알프스’ 간월산을 찾은 관광객이 연분홍 진달래가 활짝 핀 언덕에 올라 운해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고 있다. 가을철 황금물결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영남알프스는 신록의 계절에 싱그러운 봄 내음을 풍긴다.
신불산자연휴양림에 위치한 파래소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울산시 무형문화재 허진규 옹기장이 전통 물레를 돌리며 장독을 만들고 있다.
장인(匠人).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흔들림 없는 강한 정신력과 끈기로 하나의 우물을 파는 장인의 손에는 혼(魂)과 기(氣)가 스며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장인이 만들면 품격과 맛이 다르다. 유럽에 알프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영남 최고의 산맥이 있다. 유럽의 알프스산맥에 견줄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해 붙여진 ‘영남의 알프스’다.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고 위대한 자연을 품고 있는 울산 울주군으로 떠나보자.



‘독 짓는 장인’의 숨결이 깃든 외고산 옹기마을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울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인 7명이 이곳에서 직접 옹기를 만들고 가마에 구워내며 삶을 꾸려가고 있다. 옹기마을에 옹기장들이 처음 정착한 것은 50여 년 전. 1950년대 후반 경북 영덕에서 옹기공장과 옹기점을 운영하던 고(故) 허덕만 장인이 6·25전쟁 이후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옹기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원료 확보가 쉽고 시장이 가까운 이점 때문이었다. 흙이 열에 잘 견뎌 옹기를 가마에서 구울 때 깨지거나 변형되는 확률이 낮고, 전쟁 피난민이 모여들어 옹기 수요가 급증하던 부산과 가까워 유통이 원활했다.

영남에서 이름난 옹기장이가 뿌리를 내렸다는 소문이 돌자 전국 각지의 옹기장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옹기 제조업이 번성하던 1970년대에는 옹기를 만드는 집이 150가구가 넘기도 했다. 선친에 이어 2대째 옹기를 만드는 장인도 있고,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나이 지긋한 ‘독 짓는 늙은이’도 있다. 옹기골 도예를 운영하는 허진규 장인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선친의 가업을 이어 독을 짓는 2세대 토박이다.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옹기 빚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 뒤, 중학교 진학도 늦추고 수십 년째 옹기를 만들어온 그는 100% 수작업을 고수한다. 영화요업의 배영화 장인은 허덕만 장인에게 성형 기법, 유약 제조법 등을 전수해 생활 옹기를 만들어낸다. 이외에도 마을의 옹기장들은 공방과 가마를 갖추고 자기만의 옹기를 생산한다.

외고산 옹기마을의 옹기장이들은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큰 독을 만들 때는 물레 위에 백토가루를 뿌리고 흙 반죽을 올린 뒤 방망이로 두들겨 모양을 잡는다. 바닥 밑판이 잡히면 떡가래처럼 뽑은 흙띠를 한 층 씩 돌리며 쌓아올린다. 흙띠를 올리면서 주걱처럼 생긴 ‘수레’로 두드려 외벽을 다지고 두께를 일정하게 조절한다. 수레로 외벽을 두드리는 동안 옹기 안쪽에는 통나무로 만든 ‘도개’를 대 힘의 균형을 맞춘다. 옹기 성형은 숙련된 이도 서너 시간 땀을 흘려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성형이 끝난 옹기는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서서히 말린다. 건조를 마친 옹기에 ‘잿물’이라 불리는 유약을 입힌다. 나무, 볏짚, 콩대, 콩깍지 등을 다 태우고 남은 재를 물에 침전시켜 수용성 알칼리를 제거한 후 부엽토를 배합해 만든다. 유약이 옹기의 어깨와 배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릴 때 소박한 자연미와 추상적인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문양을 새겨 넣는 작업이 이뤄진다.

2차 건조를 마친 옹기는 가마 안으로 들어간다. 가마 안을 다 채우고 나면 120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불구덩이를 1주일 동안 교대로 24시간 지켜봐야 한다. 옹기를 만들 때는 인내심을 지니고 옹기를 건조해야 하며, 가마의 온도 역시 단순히 온도계가 아닌 눈과 체온의 감각이 요구된다. 언뜻 무던해 보이는 옹기지만, 수십 년 장인들의 손길이 필요한 이유다.

옹기는 숨 쉴 수 없는 불가마 안에서 숨구멍을 만든다. 옹기의 원료인 찰흙에 들어 있는 모래 알갱이나 유기물은 뜨거운 열이 닿으면 기포를 발생시키며 녹는데 이때 미세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산소분자는 쉽게 드나들 수 있지만 빗방울 분자는 내부 침투가 불가능한 작은 숨구멍이 무수히 생겨난다.

옹기의 숨구멍은 뛰어난 통기성으로 물이나 곡식을 오랫동안 보존시킨다. 또 김치, 장류, 젓갈 등의 발효를 도와 가장 좋은 맛을 끌어낸다. 또 발효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순물이나 소금쩍(소금기가 배거나 내솟아 허옇게 엉긴 것)은 숨구멍을 통해 옹기 밖으로 배출된다. 그 숨구멍을 활짝 열어주기 위해 옛날 어머니들은 아침저녁으로 장독을 닦았다.

옹기마을 곳곳을 둘러보면 지나는 골목마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마당 가득 쌓인 옹기 외에도 전통 황토 가마, 옹기를 테마로 한 다양한 조형물에서 ‘독 짓는 장인’들의 흔적이 전해진다. 어른 키의 두 배가 넘는 초대형 옹기 조형물부터 흥부네 박처럼 지붕 위에 주렁주렁 열린 장식용 옹기까지 그야말로 옹기세상이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독대처럼 다가온다. 마을 골목은 2010년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를 치르며 깔끔하게 단장됐다.

마을 뒤편에는 울산옹기박물관이 들어서 옹기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최대 규모의 옹기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옹기를 전시한다. 옹기의 효능과 제작 과정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며, 1층과 2층을 잇는 전시로는 황토 가마의 내부를 재현해 신비로운 체험을 제공한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유망 축제로 선정된 ‘울산옹기축제’가 다음달 5∼8일 외고산 옹기마을 일원에서 펼쳐진다. 옹기 만들기 대회, 옹기 만들기 체험 등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와 다례 체험, 먹거리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부대행사로 마당극 공연, 품바공연, 옹기 퍼레이드 등도 준비돼 있다.



봄꽃과 신록이 어우러진 영남알프스

신록이 푸른 봄나들이에 옹기축제와 더불어 간월재 트레킹도 추천할 만하다. 황금물결을 이루는 가을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영남알프스 줄기를 따라 싱그러운 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울산, 경남 밀양·양산, 경북 경주·청도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는 해발 1000m가 넘는 가지산·신불산·천황산·간월산 등 9개 산봉우리 군락으로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중 7개 봉우리가 울산 울주군에 있다.

신록의 계절에는 폭포와 산정 평원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코스가 걷기에 좋다. 하단지구(매표소)∼파래소폭포∼임도∼간월재∼임도∼죽림굴∼상단지구∼계곡길∼파래소폭포∼하단지구로 오는 원점회귀 코스가 추천된다. 총 11㎞ 구간으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매표소에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편백나무를 뒤로 하고 20분가량 오르면 파래소폭포에 닿는다. 15m 높이로 뚝 떨어지는 폭포는 그 자체로 위압적이고 아름답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도 신비롭다. 이어 상단지구 갈림길에서 오른쪽 비탈을 1시간가량 가풀막지게 오르면 임도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힘든 구간이 없다. 길가의 꽃과 나무를 즐기다 보면 간월재(905m)에 닿는다. 하산 길에는 천주교 성지인 죽림굴도 둘러보면 좋겠다. 길가에 돌비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죽림굴에서 임도를 따라 조금 더 내려오면 계곡 길을 걸을 수 있다. 계곡을 한참 따라 내려가면 파래소폭포를 다시 만난다.

◆여행메모
신불산자연휴양림에서 산행·숙박… 달짝지근·쫄깃한 언양불고기 별미


승용차를 이용해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와 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해 밀양 나들목에서 나온 뒤 울산 방면 24번 국도를 따라 금곡교차로에서 우회전한다. 이어 아불 삼거리에서 또 한 번 우회전한 뒤 배내사거리에서 좌회전해 파래소 유스호스텔 앞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인근 가지산온천지구에 모텔이, 배내골에는 민박집이 밀집해 있다.

외고산옹기마을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에서 울산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울산분기점에서 빠져 나오면 부산울산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이후 청량나들목에서 나와 14번 국도를 타고 5∼6㎞ 이동하면 된다.

언양은 불고기(사진)로 이름난 고장이다. 굵게 채 썬 쇠고기를 배즙에 재웠다가 양념장을 넣고 버무린 것으로 달짝지근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특색이다. 석쇠에 구워 그 맛을 더했으며 언양불고기 단지 어디에서 먹어도 맛이 보증된다. 밀집한 불고깃집들이 저마다 맛을 자랑하지만 교동에 위치한 갈비구락부(052-264-4747)가 유명하다.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뿐 아니라 케이블방송까지 무려 17개 방송에 소개됐다(울산옹기박물관 052-229-7961).

울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